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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01 18:54 수정 : 2016.04.02 17:43

[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코코가 떠났다. 13살 코커스패니얼 코코는 꽤 오랜 시간 신부전 관리와 호르몬 질환 관리를 받던 아이다. 췌장염, 빈혈까지 겹치면서 입퇴원을 반복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다 코코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치료를 받으면서 혈액검사 수치는 떨어졌는데, 전체 상태는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었다. 밤새 지켜보던 가족들은 뒤척거리는 코코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열이 40도 넘게 오르고 중간에 경련이 두어 번 나타나면서 이별할 때가 온 것 아닌가 생각했다.

치료를 해오는 동안 가족들과 얘기하면서 ‘언젠가 코코가 너무 힘들어하면 보내주자’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터였다. 나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말하고, 조만간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가족들은 나에게 한 가지 말할 게 있다고 했다.

“실은 며칠 전에 하이디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미국인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는 몇 년 전 우리나라 방송에도 출연해서 화제를 모았던 사람이다. 가족들은 자기들 욕심에 괜히 힘든 아이를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 끝에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그녀를 통해 코코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던 중 코코의 상태가 악화됐고, 하이디는 출장 중이어서 답을 들으려면 며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무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선생님… 저희는 지금 아무 선택도 못하겠어요.”

그러던 중에 경련이 한 번 더 있었다. 나도 고민이 되었다. 코코는 눈빛이 불안해 보였다. 자기가 아픈 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습이랄까. 이름을 부르면 계속 가족들과 나를 쳐다봤고 눈을 마주치고 안아달라고 했다.

나는 가족들과 상의해서 코코가 집에서 가족들과 있도록 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계속 컨디션이 안 좋으면 편하게 보내주자고 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코코는 아침 7시 반 정도 가족이 있는 집에서 눈을 감았다.

코코의 가족은 코코가 떠난 소식을 전하며, 메일을 보냈던 하이디에게 답이 왔다고 했다. 하이디가 코코에게 여러 번 되물어봤는데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고 한다. 자기는 떠나고 싶지 않다고, 좀 더 살고 싶다고. 힘들지 않으냐 되물었지만 코코는 자기는 아직 가고 싶지 않고 좀 더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가족들이 말했다. “코코는 그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뒤에 가족들 품에서 떠난 거겠죠?”

하이디가 보낸 그 답변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가족의 마음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낸 가족들이 그 아이의 마음을 제일 잘 알고 잘 느낄 거라고. 가족들 마음이나 동물들 마음은 매한가지다. 나도 힘들지만 그 아이가 아프다는 생각을 하면 더 힘든 것처럼, 아픈 동물들도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싫을 것이다. 그게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가족의 마음일 테니. 결국 내가 지금 놓을 수 없으면, 그 아이도 지금 떠나기 싫은 거라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너무 힘들어하면 보내줘야지 하며 굳이 모진 마음 먹지 않아도, 그때가 되면 아이들 스스로 떠나게 된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들었거나 혹은 아픈 동물을 돌보는 가족들은 무엇이 옳은지, 지금 이것이 최선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말도 못하는 아이가 누워서 밥도 못 먹고 기운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이 아이가 떠나고 싶은 걸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내가 힘들어서 아이를 보내려고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수의사인 나 역시도 내 아이를 떠나보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이별을 하는 시간은 쉽지 않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슬프지 않은 이별도, 힘들지 않은 이별도 없다. 곱디고운 모습으로 잘 있다가 죽음 직전에 숨 한번 크게 몰아쉬고 잠든 듯 떠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건 아주 드문 경우다. 그리고 어제까지 신나게 잘 놀던 아이가 밤에 자고 일어났더니 떠나버렸다면 그것도 정말 황망한 일일 것이다. 떠날 걸 알고 준비하고 헤어졌다면 꽤 운이 좋은 이별이다. 순간순간 힘들고 벅찬 시간이겠지만, 부디 그 시간이 길지 않기를 바라고, 가족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떠나보내는 것이 최선의 이별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안녕, 코코. 만나서 반가웠어. 우리 나중에 다시 보자.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장·<바보 똥개 뽀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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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박정윤의 동병상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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