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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24 19:57 수정 : 2016.08.24 20:02

‘1100고지 습지’ 정원에서 만난 꽃창포. 홍창욱 제공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1100고지 습지’ 정원에서 만난 꽃창포. 홍창욱 제공

지난 5월부터 새로운 모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제주에서 정원을 공부하는 시민모임’인데 지역의 기획자, 화훼 및 식물 전문가, 정원에 관심이 많은 다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5월 첫 모임 때는 ‘제주도에 꽃을 심자’는 주제로 기획자 강홍림씨가 시민운동을 제안하였고 그 자리에 참여한 공무원이 도청에서 재발제를 요청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제주도에서 1년에 경관 조성을 위해 꽃을 심는 비용만도 수억원이라고 하니 이 자발적 시민운동이 지역의 자생조직들과 연결되어 뜻깊은 결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5월 초에 유럽 농업연수를 다녀온 뒤 참석한 모임인지라 자연스럽게 독일에서 보고 온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 독일어로 ‘작은 정원’)을 공부모임에 소개하였다. 먹고살기에도 바쁜 한국 사회에 과연 꽃을 심고 가꾸고 이를 감상할 여유가 있느냐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왔지만 꿈을 꾸는 것은 자유이니 나쁘지 않았다. 최근엔 지역에서 혜나서원을 운영하는 부부가 이탈리아의 스펠로(Spello)와 라벨로(Ravello)를 다녀온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작은 골목길에 갖가지 색의 화분을 걸어놓은 스펠로에서는 매년 ‘인피오라타’라는 꽃축제를 여는데 야생화 꽃잎을 모아 도심의 길 중앙에 성화를 꾸민다. 최근엔 일본 고베에도 이 축제와 꽃장식이 몇 년간 이어져오고 있다. 바닷가 해안 절경이 아름다운 도시, 라벨로는 이러한 경관을 주 무대로 매년 음악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두 마을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다양한 식생이 자라고 바닷가가 아름다운 서귀포가 떠올랐다.

한 달에 한 번 서귀포 자연에서 정원을 공부하는데 가드너 김봉찬씨의 해설로 그동안 서귀포 칠십리시공원, 어승생악, 1100고지 습지, 교래자연휴양림을 방문하였다. 지역에 자생하는 식생에 대해 배우고 철마다 바뀌는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 지역에 특정 식물이 많이 자랄 때에는 생육환경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대표적인 곳이 ‘1100고지 습지’였는데 고지대임에도 습지가 조성되고 식생도 조화롭게 형성돼 있었다. 통행로 외에는 누구도 인공적으로 조성하지 않은 습지정원이었으나 정원의 ‘정’ 자도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요즘 내가 정원에 꽂힌 이유는 경관이 무척 아름다웠던 독일, 오스트리아 연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제주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제주다우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고,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일거리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니 김녕미로공원과 카멜리아힐, 환상숲이 떠올랐다. 모두 지역과 가장 잘 어울리기도 하고 처음 시작하였을 때는 주위에 말리는 사람들뿐이었을 일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빛을 보고 주위 사람들까지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숲 가꾸기이고 자신만의 정원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당장에 숲과 벗하며 병행할 수 있는 일로 내년부터는 벌키우기를 시작할 생각이다. 벌을 키우려면 당연히 꽃과 나무를 알아야겠기에 정원모임에도 열심인데 공부를 하다 보니 제주엔 육지에 없는 식생들이 많고 해안가 낮은 지형부터 한라산 고지대까지 식물자원이 풍부하다. 이제 제주의 산과 바다, 하늘과 구름 등 굵직굵직한 선만 볼 것이 아니라 때죽나무에 달린 종 모양의 열매와 1100고지 습지에 홀로 핀 꽃창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시민이 주도하는 정원 가꾸기, 정원박람회, 시민아카데미의 정원수업 편성까지 가드닝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별도의 정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의 제주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지키는 노력이 조금 더 구체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제주 자연정원을 시민들이 함께 걸으며 꽃과 나무를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큰 시작이다.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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