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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작업실 ① 이현세
산고의 공간, 머릿속 상상이 밖으로 태어나는 곳. 거기에 보태어 만화가의 작업실은 오랜 세월 가난이 동거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만화의 주력이 웹툰이 되면서 가난하고 폐쇄적이었던 만화가의 작업실 풍경도 바뀌고 있다. 작업실은 주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 증언한다. 대본소 시절을 대표하는 작가로 출발해 이제는 웹툰에 도전하는 만화가 이현세의 작업실을 찾아 지금 시대 만화의 풍경을 살펴봤다. 1979년 월남전을 다룬 <저 강은 알고있다>로 데뷔했으니 만화 인생 36년을 넘겼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작업실로 옮긴지도 올해로 20년이다. 그런데 뜻밖에 만화가 이현세의 작업실은 차린지 얼마 안된 회사처럼 보였다. 그를 스타 작가로 만든 <공포의 외인구단> 시리즈부터 <지옥의 링>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등 그의 대표작들이 진열된 입구로 들어서면 함께 일하는 배경 그림 작가 2~3명의 자리가 있고 그 옆 방이 이현세 작가의 작업실이다. 일간지 2곳에 동시 연재하면서 단행본까지 만들던 시절엔 지하에 열댓명 작가들이 밥먹고 잠자는 공간이 있고 꼭대기 옥상엔 이현세의 작업실이 따로 있었다. 지하부터 옥상까지 ‘만화 공장’이었던 이곳은 만화산업이 줄어들면서 작업실만 남기고 단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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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에 도전하는 작가 이현세는 여전히 연필과 종이라는 단순한 연장으로 우직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을 고수한다.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던 <천국의 신화>를 환갑을 남긴 나이에 다시 그리며 못다 한 고대 신화를 완성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사진 오성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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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감은 몽당연필들은 손 느낌을 중시하는 그가 애용하는 도구다. 사진 오성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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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땐 건물 전체가 ‘만화공장’
산업 줄면서 공간도 줄어 ‘천국의 신화’ 웹툰 연재 도전
커다란 모니터는 최종확인용
연필 스케치 뒤 플러스펜 콘티
‘진수무향’ 족자 작품의 길일까 이현세 작가의 책상엔 커다란 모니터가 있지만 컴퓨터로 그리지는 않는다. 최종 그림을 확인할 때만 쓴다. 그의 진짜 연장은 책상에 놓인 한 웅큼의 몽당연필이다. 짧은 연필들을 모두 종이로 감아 끝까지 쓰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다. “가난한 습작시절 외국 연필 한 자루 구하면 정말 귀하게 썼다. 몽당연필까지 버리지를 못했던 습관이 남아 있다. 요즘 웹툰 작가들은 장비 다루는 것도 실력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저 오랫동안 익힌 감각에 의지한다.” 종이를 감은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콘티는 플러스펜으로 그리는데 어느쪽이나 정교하기 짝이 없다. 스토리, 작화, 배경의 분업을 뜻하는 ‘대본소 시스템’이 ‘작가 정신 부재’를 말하는 것인양 쓰이기도 하지만 그는 남의 손에 작품 마무리를 맡겨야 하니 스케치는 바로 출판해도 될 만큼 정교하게 그리고 콘티는 일일이 활자를 찍어 붙이는 습관을 키웠다고 한다. “인쇄를 해도 될 만큼 깨끗한 스케치, 오타 하나 없는 대사에 편집증같은 집착이 있다”는 그는 실제로 펜선없이 스케치위에 채색한 <창천수호위> 같은 만화책을 내기도 했다. 작업실 한켠에는 사실적이고 정교한 그림을 추구하는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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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작가가 그린 콘티 원화. 사진 오성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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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열댓명의 만화가가 협업하는 만화공장 같던 작업실은 지금은 2~3명의 배경그림작가들이 지키는 소박한 공간이 됐다. 사진 오성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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