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09 21:09
수정 : 2016.06.0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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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조 밴드 ‘빌리카터’의 멤버 이현준, 김진아, 김지원(왼쪽부터).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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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인디밴드 열전
빌리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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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인디밴드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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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작년 여름쯤이었던 것 같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려고 기다리다가 남성잡지를 뒤적였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음악평론가 이대화의 글이 있길래 읽어보았다. 어떤 신인 밴드의 앨범을 소개하는 글이었는데, 팀 이름이 ‘빌리카터’란다. 이름만 들어서는 팝인지 가요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웬걸. 실제 성격처럼 항상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이대화의 글답지 않게 극찬의 표현들이 난무했다. 대체 어떤 팀이길래 이 친구가 이렇게 칭찬을 하는지 궁금해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음악을 찾아 들었다. 소박하게 5곡이 담긴 첫 음반을 플레이하는 순간, ‘대박!’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영애, 장필순, 재니스 조플린, 지미 페이지 등등 전설의 이름들을 떠올린 건 지나친 반응이었을까?
빌리카터는 노래하는 김지원과 기타를 치는 김진아, 두 명의 여성 뮤지션이 의기투합한 어쿠스틱 듀오로 시작했다. 2012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 둘은 영화처럼 어쿠스틱 기타만 달랑 들고 거리공연을 벌였다. 그들의 버스킹을 본 적은 없지만 여러 장르를 연주한 듯하다.
클럽 공연과 여러 페스티벌 무대를 경험한 그들은 이듬해인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드러머 이현준을 영입하고 김진아가 어쿠스틱기타 대신 일렉트릭기타를 들면서 이들의 음악은 강렬하고 대담한 색채로 변모한다. 달라진 스타일을 고스란히 담은 미니음반 <빌리카터>(Billy Carter)를 2015년에 발표하고, 올해는 다시 어쿠스틱 편성으로 돌아간 두 번째 음반 <옐로>(Yellow)를 발표했다.
빌리카터의 음악은 뭐라고 간단하게 정리하기가 어렵다. 록, 로커빌리, 블루스, 펑크 등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있다. 악기 편성도 대담하게 베이스 없이 드럼과 기타뿐이다. 노래는 김지원이 주로 부르고 기타를 치는 김진아가 거드는 식인데, 둘의 목소리가 확연히 달라 어떤 곡은 듀엣 같기도 한다. 이토록 독창적인 음악은 참으로 오랜만인데, 이들의 자신만만함은 그룹 이름을 지은 이야기에서부터 엿보인다. 이름만 들어서는 도대체 무슨 음악인지 예상할 수 없게 하고 싶어서, 미국의 평범한 시골아저씨 이름 같은 팀명을 붙였단다.
좋은 식사가 그러하듯, 빌리카터의 음악은 듣는 이가 다양한 감정을 흡수하도록 해준다. 표현력이 좋다 못해 소름까지 돋게 만드는 김지원의 보컬은 종종 각성 효과를 내고 때론 술을 마시고 싶게 만들고 불쑥 리비도를 뒤흔들기도 한다. 작곡과 기타를 맡은 김진아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음악만 들어서는 절대로 여자가 작곡한 노래, 여자가 연주한 기타라고 생각할 수 없다. 정말 겁도 없이 잘도 논다. 팀의 유일한 남자 멤버인 이현준의 드럼도 단단하게 리듬을 구축해준다. 똑같은 디자인에 빨간색, 노란색으로 색깔만 다른 두 개의 음반에는 각각 다섯 곡과 여섯 곡의 노래가 실려 있다. 1집은 묵직한 일렉트릭기타 소리와 헤비한 드럼 플레이가 가득하고 2집은 어쿠스틱의 산뜻함과 여유로움이 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1집이 더 좋지만 2집 역시 심각하게 사랑스럽다. 11곡의 멋진 노래 중 뭘 추천해야 할지 모르겠다. 겨우겨우 몇 곡을 골라본다. 1집에서는 ‘침묵’ ‘유 고 홈’(You go home), 2집에서는 ‘아이 돈 케어’(I don’t care). 공연 동영상도 여럿 있다. 물론 실제 무대에서 보는 게 최고겠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곡이 영어 가사로 되어 있다는 것. 두 곡의 우리말 가사가 있는데, 이렇게 한글 가사를 잘 쓰면서 왜 더 안 쓰는지 모르겠다. 첫 번째 음반의 첫 곡 ‘침묵’의 첫 가사를 인용하면서 오늘 글을 마친다.
“슬픔이 거세된 세상에서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하하하 웃는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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