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29 11:46
수정 : 2016.07.29 19:09
이재익의 인디밴드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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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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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하도 튀는 팀명이 많아서 웬만해서는 이름으로는 눈길을 끌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지?’ 하고 이름 때문에 음악을 듣게 만든 팀이 있었으니, '전범선과 양반들'이다. '내 귀에 도청장치 이후' 가장 돋보이는 이름이었다.
팀명에 리더의 이름이 붙는 경우 그의 영향력이 지대하리라는 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팀도 그렇다. 작사 작곡과 노래를 도맡아 할뿐더러, 팀을 소개하는 글에도 떡하니 전범선의 얼굴 사진이 박혀있다. 그것도 하얀 저고리에 상투까지 튼 모습으로. 전범선의 사진을 보고 녹두장군 전봉준의 얼굴을 떠올리는 건 나뿐일까?
2014년 여름에 데뷔 음반 <사랑가>로 등장했을 때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1집 음반에 담긴 음악은 팀 이름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전혀 없는, 그저 달달하고 여유로운 어쿠스틱 포크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래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인디밴드의 한계를 드러내는 조악한 사운드가 거슬리긴 했지만 돈을 좀 더 들여 녹음하고 믹싱했다면 제법 괜찮은 결과물이 되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겨우 그 정도로는 강렬한 이름으로 생긴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나는 관심을 접었다.
그리고 전범선과 양반들이 10곡이 담긴 2집 음반과 함께 돌아왔다. 음원사이트에 뜬 그들의 새 음반 소식을 보고 별 생각 없이 신곡을 들은 나는 굳어버렸다. 뭐지? 이 엄청난 변화는? 도저히 같은 밴드가 만든 음반들이라고 여길 수 없을 만큼, 1집과 2집은 달랐다. 2집은 정말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음악이 담겨 있었다. 장기하의 첫 음반을 들었을 때? 작년에 빌리카터의 음악을 들었을 때의 충격 정도 될까?
충격의 크기가 비슷하다 뿐이지, 전범선과 빌리카터의 방향성은 너무나도 다르다. 빌리카터가 너무나도 서구적인 블루스 록음악이라면 전범선의 음악, 특히 2집 음반은 록이라는 서양의 그릇 안에 익을 대로 익은 된장을 담아놓은 느낌이다. 팝음악의 틀과 한국적인 정서를 이보다 더 멋지게 조화시킨 팀이 또 있었던가?
10곡을 내리 들으면서 전범선이라는 인물의 정보를 검색했다. 대차게 상투를 튼, 정말로 녹두장군 전봉준 같은 프로필 사진 아래로 뜨는 인물정보를 보고 나는 또 놀랐다. 햄버거도 안 먹고 해외여행도 안 다녀봤을 줄 알았던 양반이 무려 다트머스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니! 게다가 이 칼럼에서 소개한 적도 있는 밴드 ‘이스턴 사이드 킥’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경력도 눈에 띄었다.
1집은 논외로 하고, 2집에 담긴 그들의 음악만을 얘기하자면 일단 제품으로서의 수준, 그러니까 녹음과 마스터링의 수준이 몹시 뛰어나다. 전범선의 고향인 춘천에서 녹음했다는데 미국이나 유럽의 유명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 못지않은 수준을 보여준다. 내용적으로는 앞에서 말한 록 장르에 실린 강렬한 한국적 정서와 함께 '혁명'이라는 화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집 음반의 타이틀은 ‘사랑가’. 2집 음반의 타이틀은 ‘혁명가’다. 노래 제목들도 두 가지 공통점을 보이는데, 먼저 매우 한국적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석사까지 하셨다는 분이 그 흔한 영어 단어를 하나도 안 썼다. 동시에 불온한 선동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불놀이야’, ‘도깨비’, 난세의 영웅', ‘보쌈’(먹는 보쌈이 아니다!) 등등. 그걸로 모자라 타이틀 곡 제목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니. 아, 이 노래는 꼭 들어봐야 한다. 잠시 가사를 볼까?
“언제까지 그렇게 누워만 있을 건가/ 번데기처럼 가만히
안된다고 그렇게 말로만 하지 말고/ 아래로부터 찬찬히
자, 한번 엎어보자!”
노래도 좋지만 영상도 검색해 보길 권한다. 두 개의 영상을 추천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못된 양반을 해치우는 의적의 모습을 담은 공식 뮤직비디오. 그리고 네이버 온 스테이지에서 나온 라이브 영상. 특히 두 번째 영상을 보면 연주 중에 전통 북을 두드려대는 모습이 무척이나 강렬한 쾌감을 준다.
‘전범선과 양반들’이라는 팀 이름을 정한 이유에 대해 전범선은 이렇게 설명했다. 낮에는 훈장질을 하고, 밤에는 풍류를 즐기는 양반같이 사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인지 몇몇 평론가들은 이들의 음악을 양반의 록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혁명을 원하는 양반이 어디 있나? 이들의 음악은 천하의 상놈들 음악이다. 벌건 눈으로 낫을 들고 뛰어다니며 신명나게 부르짖는 혁명의 록. 끝내준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사진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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