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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10 20:29 수정 : 2016.02.1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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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예능 피디 일 가운데 가장 고되면서도 중요한 게 바로 편집이라고 합니다. 편집실에서 꾀죄죄한 몰골로 숱하게 밤을 새우는 피디들의 고생담은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해질 지경이죠. 한때 제가 출연하던 <한겨레티브이>대중문화 비평 프로그램 <잉여싸롱>의 조소영 피디는 편집할 때 제 얼굴을 질리도록 봐서 나중에는 제가 미워질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그 지난한 과정을 저도 슬쩍이나마 맛보았습니다.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고프로 미디어 트레이닝 행사에서 담아온 고프로 영상을 집에서 컴퓨터로 직접 편집해본 겁니다. 스노보드를 타며 내가 직접 찍은 영상과 파트너가 나를 찍어준 영상의 분량이 상당했습니다. 그걸 하나하나 살펴보고 쓸 만한 장면을 골라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각각의 장면이 나름의 의미와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걸 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 하나로 이어붙이고, 그걸 또다시 줄여나가는 과정은 수행의 길과도 같았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사를 길게 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짧게 쓰는 게 훨씬 더 어렵습니다.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만 압축해 넣는다 해도 정해진 분량을 넘어서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글을 다듬으며 줄이고 또 줄입니다. 조사, 형용사, 부사를 먼저 줄이고, 그래도 안 되면 피 같은 문장을 통째로 들어내야 합니다. 이 칼럼도 그렇습니다. 늘 넘치게 쓰고 나서는 200자 원고지 5장이 채 안 되는 분량이 될 때까지 덜어내고 또 덜어내는 짓을 매주 반복합니다.

삶은 어쩌면 채우는 것보다 덜어내는 게 더 힘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덜어냄의 미학을 깨치고 나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주 esc 에세이면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에 나오는, 버리고 덜어낼수록 행복해지는 지리산 사람들, 그들을 닮고 싶어졌습니다. 편집을 하다 인생을 배웁니다.

서정민 esc팀장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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