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27 13:03
수정 : 2006.07.27 13:55
3년 마다 신차를 뽑는 것이 남는 것이다?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인 A를 만났다. 승용차를 바꾼 기념으로 시승식을 하자는 것이다. 전에 타던 승용차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또 신차를 뽑은 A에게 요즘 벌이가 괜찮은 모양이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승용차는 3년 정도 타면 소모품을 교체해 줘야 하거든.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 램프 하나하나 신경 써야지,플러그 교체해야지,타이밍벨트,브레이크 오일,미션오일 등등……그렇다고 소모품 비용 아끼다가 차가 퍼지기라도 하면 골치 아프잖아? 차라리 그 유지비로 새 차를 사는 게 더 유리하지. 중고차 팔고 새 차 사는 가격이면 뭐 그리 손해 보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신형차가 나오면 타고 싶잖아? 폼도 나고……나만 그런 게 아니라 승용차 주기적으로 바꾸는 사람들은 다 그래.”
재무설계사로서의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글쎄……소모품 비용이 과연 그렇게 많이 발생할까?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생산되는 국산차의 수명은 약50만km 라고 한다. 우리 나라의 신차 교체주기는 3.8년에서 2005년 5월 현재 6.3년으로 늘어났지만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등에 비해 아직도 비교적 일찍 교체하는 경향이 있다. 맹목적인 신차 선호주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명확한 비용에 대한 인식 없이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A의 사고방식이다. 자동차의 평균 수리비가 연간 평균 60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이 안에는 엔진오일 교환 등 신차여부에 관계없이 필수적인 지출이 포함되어 있다. 반면 자동차세는 3년째부터 매년 5%씩 최대 50%까지 할인이 된다. 2,000CC급 중형승용차의 경우 매년 13만원 이상이 절약되는 것이다. 거기에 신차 구입으로 인한 자동차 보험료 인상분 (자동차 보험료의 경우 자기차 손해 부분의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신차의 보험료가 상당히 높다.)까지 고려한다면 차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0~20만원의 보험료를 절약할 수 있다.그리고 신차 구입에 따른 세금,탁송비용 등 부대비용과 추가부담금액을 따진다면 A의 생각이 변명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또 주택과 승용차의 효용은 하방경직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교체때 마다 더 좋은 차를 구입하는 경향이 있어 비용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재무설계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승용차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A와 같은 논리를 펴곤 한다. 그러나 소득 대비 지출이나 다른 재무목표들,예를 들어 자녀 교육비나 노후자금은 고사하고 계속해서 승용차 할부금 갚아나가기에 여념이 없는 이런 사람들이 제대로 된 미래를 맞이하기 만무하다. 3년마다 수리비가 아까워 새차를 뽑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할부금을 가계 고정지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긴 시간동안 고정지출로 빠져버리는 자동차 할부금은 아이들의 교육비와 미래 은퇴자금을 미리 끌어다 쓰는 것과 같다.
게다가 자동차운영은 할부금 외에도 각종 유지비가 많이 들어간다. 2000CC급 자동차라면 기본적으로 연간 세금만 50여만원이 넘고 자동차 보험도 100만원 선, 기름값은 출퇴근으로만 이용한다해도 월 20만원 이상, 연간으로 따지면 200만원이 넘는다.
거기에 수리비와 각종 벌금 등을 합하면 2000CC급 한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연간 400만원가량이 들어가는 것이다. 할부금까지 더하면 1000만원가량을 자동차 유지를 위해 지출하게 된다. 우리나라 가구 소득의 평균이 3670만원(2006년 1/4분기 전국 가구 소득평균) 인데 거의 연봉의 27%를 자동차에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차를 모시고 살수는 없다
물론 일정 이상의 삶의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편리함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적은 비용을 책정해서 최소의 비용으로 자동차 유지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어도 연봉의 10%이상은 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너무 폼나는 차만 고집할 것이 아니고 3년이 넘어도 수리비가 적게 들어갈 수 있도록 차계부를 만들어 차 운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최근의 국산차도 기술발전으로 10년이상은 유지해도 문제없을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아무리 차가 편리하고 좋다고 하지만 어느 광고에서처럼 같이 자고 목욕하고 식사하는등 모시고 살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미래 준비를 위해 바쁜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연봉의 30% 가까이를 차에 지출하는 것은 모시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는 자동차도 막연히 사서 운영할 것이 아니고 이렇게 전반적인 가정의 재무상황, 즉 소득과 미래 준비에 필요한 저축량등을 고려해서 합리적으로 예산을 책정해서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승용차의 작은 경제학이다.
“그래도 내수경기가 살아나야 대한민국이 발전을 하는데,나라도 열심히 자동차 경기 활성화에 보탬이 되야지…”
한참동안 이야기를 듣던 A가 흐릿하게 한 말이다. 내수경기를 진작하기위해 4백만 이상의 사람들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어버린 카드대란이 떠올랐다. 자동차 경기 활성화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생각보다는 일생동안 꾸준한 소득과 지출로 큰 부침없는 내수경기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은퇴 후를 준비하지 못해 소비는 커녕 생계곤란으로 복지정책에 기대 살수밖에 없는 삶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지 않을까?
- 이 성 호 (에셋비 재무컨설턴트,shlee@asset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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