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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13 21:21 수정 : 2006.12.14 02:03

세계 최대의 펀드 수탁고를 보유한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의 뉴욕 브랜치의 내부 전경

[캠페인] 금융소비자 주권 찾기 ⑥ 세계적 자산운용사 펀드 판매

업무창구선 못 팔고 재무 전문가만 상담 장기 분산투자 철저

“미국에서는 투자은행이나 자산운용사 임직원이라도 자격증이 없으면 절대로 고객에게 펀드를 팔 수 없습니다. 설혹 요건을 갖춘 상담사가 펀드를 팔더라도 미래나 가상의 미실현 수익 따위를 고객에게 강조했다가 들통이 나면 가차없이 해고되고 자격증도 박탈되지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스트리트에 본사를 둔 메릴린치나 세계적 자산운용 그룹인 피델리티·시티뱅크·뱅가드 등은 펀드의 ‘불완전 판매’를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운용할까? 한국은 2004년 봄부터 저금리 영향으로 거의 각 가정마다 재태크 수단의 하나로 펀드에 가입하는 붐이 일었다. 묻지마 투자자도 가세했다. 이런 분위기는 올 들어 지난 11월 말까지 주식형 펀드 설정 잔액만 사상 처음으로 46조원을 돌파할 만큼 식을 줄 모르고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그러나 판매 경쟁에만 혈안이 된 국내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불완전 판매’로 고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한국이 펀드 선진국인 미국에서 벤치마킹해야 할 운용 방안은 무엇인지, 최근 자산운용협회 회원사 공동연수팀과 함께 현지를 둘러봤다.

규정 어긴 펀드 상담사, 가차없이 퇴출시켜=뉴욕 월가의 메릴린치 본사에서 만난 로버트 자켐 전무(사진 아래 왼쪽)는 최근 한국에서 물의를 빚는 ‘불완전 판매’ 현상과 관련해 “미국 사회에서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규정을 어긴 재무상담사(Financial Advisors)는 명단과 ‘혐의’ 내용이 전미증권협회(NASD) 공개 사이트에 올라가기 때문에, 한번 ‘실수’한 상담사는 곧바로 금융계에서 퇴출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914년 설립된 메릴린치는 2005년 말 기준으로 세계 37개국에서 1조5천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3대 투자은행의 하나다. 세계 770여개 지점에 모두 1만5천여명의 재무상담사를 두고 고객 자산관리를 돕고 있다. 미국 내 최대 펀드 판매업체인 만큼, 무엇보다 ‘고객과의 신뢰관계를 깨뜨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히 징계한다고 한다.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메릴린치는 갓 입사한 직원에게는 상담사 타이틀을 절대 맡기지 않는다. 입사 뒤 최소 5년 이상 고참 상담사 밑에서 철저한 ‘도제식’ 트레이닝을 통해 금융 컨설팅 교육을 받아야 한다. 고객의 투자 목적과 위험 감내 여부, 재무·세무 현황까지 모두 파악해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펀드 상품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도출할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자격증을 딸 수 있고, 회사 창구 직원 등을 거쳐 3~4진급 재무상담사로 진출한다.

세계 37개국에서 1조5천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3대 투자은행의 하나인 메릴린치 뉴욕 본사 정문
메릴린치는 재무상담사가 고객에서 절대 언급해서는 안되는 조항 3가지를 들어 ‘전가의 보도’로 활용한다. 펀드의 안정성을 강조하지 말아야 하며, 잠재적 수익이나 미실현 수익에 대해 얘기해서도 안된다. 미래 수익에 대해 섣불리 언급하는 것도 금하고 있다.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당사자를 경고부터 정직·해고까지 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회사에서 해고당한 상담사는 주정부로부터 자격증까지 박탈당한다.

상담 시간 절반은 투자자 교육에 할애=세계 100여개 나라에 3400여개 지점을 거느린 종합금융그룹 시티뱅크는 투자 상담의 50% 이상을 투자와 펀드에 관한 고객 교육에 할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맨해튼 32번가 시티뱅크 코리아타운 지점에서 만난 애런 김 지점장은 “고객이 투자를 이해해야 상담도 가능하다”며 “교육의 주된 컨셉은 고객에게 ‘자산관리의 원칙’을 철저히 주지시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펀드 투자는 언제라도 손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확실히 인식시키는 게 제일 큰 숙제다. 투자금이 고객의 총자산인지 아니면 빌린 돈인지, 또는 ‘검은 돈’인지 따위도 파악해야 한다. 고객의 위험 성향과 투자 기간도 진단해야 한다. 권유 상품도 미국 내에서 상위 25%에 드는 ‘질좋은’ 상품만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투자의 정석도 철저하게 분산과 장기투자, 꾸준한 적립식으로 일관한다. 업무 창구에서 펀드상품을 권유한 직원은 곧바로 사표를 써야 한다. 전화받는 직원이 펀드상품에 관해 얘기해도 안된다. 펀드를 판매하고 상담하는 곳은 전문 상담사가 있는 별도 창구에서만 가능하다.


실례로, 지난달 28일 공동연수팀이 방문한 시티뱅크 코리아타운 지점에서는 ‘시간이 없으니 펀드에 대해 하나만 물어보고 가겠다’는 교포 여성과 ‘내부 규정상 펀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으니 대기 순번을 받아 전문 상담사와 논의하라’는 창구 직원간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 지점장은 “미국은 투자 역사가 긴 만큼 주식이나 펀드투자에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철저히 고지하지 않으면, 곧바로 고객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회사 발전에도 치명타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판매 경쟁에 치우쳐 무책임하게 ‘불완전 판매’에 올인하는 한국 금융회사들을 향한 따끔한 ‘질책’으로 받아들여졌다.

뉴욕/최익림 기자 choi21@hani.co.kr

인터넷 가입 대세 펀드 수수료 ‘뚝’

홈페이지 관리에 2억달러 투입

메릴린치와 피델리티, 뱅가드 등은 일찍부터 다양한 판매 채널을 가동해 왔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미국 자산운용협회(ICI)의 2004년치 통계를 보면, 1990년까지는 투자자의 71%가 금융회사에서 펀드상품을 구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펀드 슈퍼마켓이나 독립 재무상담사 등 중개 채널을 통한 구매는 29%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는 양쪽의 비중이 46%와 54%로 뒤바뀌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인터넷 가입이 대세를 이루면서 펀드 구매 비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때문이다.

중개 채널을 통한 펀드 가입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 피델리티나 메릴린치 등은 각종 멀티미디어가 구비된 웹망을 통해 고객의 80~90% 안팎을 모니터로 관리한다. 약 2천만명 안팎의 투자자 자산 관리 내역과 인적 상황 등이 담겨있다. 이 때문에 홈페이지 관리에만 적게는 수천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억 달러를 투입한다. 피델리티는 세계 최대 펀드 판매 수탁고를 보유한 자산운용사답게 지난해 컨텐츠 강화와 홈페이지 단장을 위해 2억 달러를 투입했다. 미국 전역에 흩어진 투자자들을 강력한 웹망으로 흡수하겠다는 포석이다.

재무상담사와 자산 컨설팅 또는 투자 조언을 들은 고객도 펀드 가입은 대부분 지사에 설치된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서 한다. 우선 컨설팅 수수료가 없고, 창구 직원을 통하지 않으니 구매 비용이 확 떨어지기 때문이다. 투자자로서는 판매 보수를 덜줘도 되고, 판매자 처지에서는 상담사 유지 비용 외에는 인건비가 들지 않아 좋다. ‘누이 좋고 매부좋은’ 셈이다.

미국자산운용협회 통계를 보면, 1980년 2.32%이던 주식형 펀드의 평균 보수는 2005년 말 1.13%로 줄었다. 25년 사이에 펀드 구매 비용이 절반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인터넷 구매 외에도 1975년 수수료 자유화로 자산운용사들이 ‘판매 수수료를 없앤 펀드’(NO-load 펀드)를 도입한 것도 펀드 구매 비용을 절반 아래로 떨어뜨리는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마틴 번즈 미국자산운용협회 이사는 “다양한 유통 채널이 등장하면서 저렴한 비용의 펀드상품이 쏟아져 나온데다 업체들간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 비용을 떨어뜨린 직접적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최익림 기자

펀드슈퍼마켓

경쟁사 상품 함께 팔아 고객 맞춤형 선택 보장

펀드수퍼마켓이란 전문 펀드 판매 중개회사가 여러 자산운용사에서 발행한 다양한 펀드상품을 한꺼번에 갖춰 놓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지난 1992년 미국 최대 할인 증권사인 찰스 슈왑이 25개 운용사가 내놓은 700여개 펀드를 수수료 없이 투자자들에게 소개·판매한 게 효시다. 현재 메릴린치는 120개 운용사에서 내놓은 3천개의 펀드를 자사 내 수퍼마켓에서 팔고 있으며, 피델리티도 380개 운용사가 발행한 펀드 4500개를 수퍼마켓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상담 과정에서 고객에게 자기 회사 상품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경쟁사 상품도 함께 판다. 고객의 재무상태에 가장 맞는 맞춤형 상품을 설계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는 1990년 이후 계속된 증시 호황으로 투자자들이 재무상담사의 자문을 구하지 않고 판매회사가 인터넷에 제공한 정보만으로 스스로 투자를 결정하는 추세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펀드수퍼마켓도 이런 투자자를 위해 각종 첨단 멀티미디어가 필요하게 됐다. 피델리티나 메릴린치가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강력한 웹망을 구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펀드수퍼마켓은 소규모 운용사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판매 채널을 안겨준 것 외에도, 이전까지 운용사와 판매사가 따로 관리하던 각종 고객 관련 자료를 통합 관리함으로써 관리 비용도 크게 낮췄다. 투자자 처지에서는 절약한 펀드 구매 비용을 다시 다른 펀드를 구매하는 자금으로 쓸 수 있다. 이런 순환 구조가 미국 간접투자 시장의 파이를 점점 더 키운 셈이다.

최익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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