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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훈(가명·29)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의 6㎡ 방에 산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고시원과 옥탑방, 원룸 등 집이 아닌 ‘방’에 사는 이들에게 ‘큐브생활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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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행복한 세상]
에필로그: 못다 한 이야기
“새해기획으로 청년문제를 다뤄보려고 해요.”
“어머, 진부해라~. ‘맡겨놓은 표 돌려달라’는 식으로 다시 청춘을 호명하려구요?”
지난 연말 <한겨레>가 새해기획으로 청년문제를 준비한다고 하자, 이승한 티브이칼럼니스트가 건넨 말이다. 선거를 앞두고 쏟아질 언론의 ‘청년팔이’식 보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었다. 그는 “한겨레가 청년을 호명하면서 그들이 정치적 주체로 각성하길 바라며 ‘주입식 기사’를 써온 전력이 있다. 그 이전에 청년들이 왜 정치적 주체로 자각할 겨를도 없어진 건지에 대해 제대로 취재해보라”고 주문했다. 뭔가 뜨끔했다. 장강명 작가(<한국이 싫어서> 저자)는 “나한테 묻지 말고 한겨레 20대 기자 20명과 토론을 벌여보라”고 했다. 헉! 떠올려보니 편집국 20대 기자는 한 손으로도 꼽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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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가명·25)씨를 비롯해, 취업난에 무기력함을 느끼는 청년들이 많다. 김봉규 선임기자, 김성광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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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가 줄면서,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치솟는다. 김봉규 선임기자, 김성광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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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들은 ‘서류광탈’ 십상
스펙 쌓으려면 그것도 돈” 분통 ‘금수저-흙수저’가 제목에 달리면 유독 기사 조회수가 높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전문가는 “유명 대형로펌의 경우 클라이언트(고객) 자녀들을 일주일씩 인턴을 시켜주느라 대기자가 한참 밀려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한참 동안 여운을 남긴 말이었다. 일부 독자들은 “흙수저들은 ‘서류 광탈’(빛의 속도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한다는 뜻)이 되기 십상이다. 스펙을 쌓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월수입 130만원 비정규직 안정애씨
“얼마 벌고 싶냐”에 “딱 170만원”
기성세대들은 “설마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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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애(가명·28)씨처럼 일해도 가난한 청년들이 적지 않다. 김봉규 선임기자, 김성광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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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진 않지만 만감 교차”
“40년 뒤 그곳은 노인들 차지” 댓글 한아름(가명·30)씨는 그가 사는 좁은 원룸을 나설 때면 종종 인근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소개팅남이 그의 집에 데려다줄 때 으레 여기겠거니 하고 내려주는 곳은 번듯한 주상복합 아파트다. 원룸에 살아서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감이 교차한다. 청년들의 주거격차를 다룬 기사에 대해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집을 해주는 부모는 자식에게 20년의 인생을 선물해주는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나 “40년 뒤에는 (현재 청년들이 살고 있는) ‘큐브’에 노인들이 넘쳐날 것” “좀더 지나면 저 좁은 방에 (혼자가 아니라) 둘이 사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암울한 말들을 쏟아냈다. 전세난에 강원도 원주시와 세종시 등지로 ‘탈서울’을 강행한 부부, 독립할 돈이 없어 부모 집에 얹혀사는 30대 ‘캥거루족’의 생생한 고민 등 취재를 하고도 기사로 담아내지 못한 사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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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성향 청년들이 <한겨레> 좌담에서 처음 마주 앉았다. 김봉규 선임기자, 김성광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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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낯설었는지 SNS 포스팅
“내 돈 주고 한겨레 사볼 줄이야” ‘20대 진보-보수 좌담’ 기사는 또다른 측면에서 ‘핫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양쪽 성향의 청년 3명씩이 참석한 좌담기사가 나간 뒤 가장 많이 쏟아진 주변의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근데요, 한겨레가 보수 청년들을 어떻게 섭외한 거예요?” “진보-보수 양쪽이 3 대 3 미팅 대형이던데 어떻게 된 거예요? 보수 성향의 여성 청년은 왜 없나요?” 진보 매체인 한겨레가 보수 청년들을 대거 부른 데 대한 놀라움(?)이기도 했지만, 본인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발언하는 보수 청년이 현실에선 그리 많지 않다는 인식이 뒤섞인 반응이었다. 패널 섭외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청년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20대 매체나 논객, 활동가 등을 찾아 나선 결과였다. 낯선 것은 보수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내 돈 주고 한겨레신문을 구입하는 날이 올 줄이야!”(한 보수 성향 패널이 에스엔에스에 포스팅한 글) “(진보-보수) 매체를 가리지 않는 면모가 쿨해 보여 멋집니다~.”(또다른 보수 성향 패널의 지인이 에스엔에스에 단 댓글) 보수 패널은 남성, 진보 패널은 여성으로 갈린 것을 두고 “청년세대의 정치 성향이 젠더화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전문가(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의 해석도 흥미로웠다. 그는 “19대 총선에서 20대 초반 여성 투표율이 18대에 비해 높은 증가율을 보인 바 있다. 20대 중반이 된 촛불소녀의 세대효과로 주목하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산업화세대가 영화 속 할아버지라면 386과 포삼(포스트386)은 현실에 실재하는 꼰대’라는 청년 패널들의 이야기에는 세대 간 인식의 간극이 새삼 드러나기도 했다. 청년들의 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386 일부에선 “세대갈등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한 반면,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박탈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끝낼 수 없는 한겨레의 말걸기
못다 한 말 ‘딥톡’ 하실래요? 기획이 종반으로 치닫자, 또다시 기자들을 애태운 것은 ‘노답’으로 끝내선 안 된다는 강박이었다. 균등한 교육기회의 보장, 기업 간 임금격차 해소 등 사회구조 개혁만 외친다면 독자들이 공허해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다시 청년들을 만났다. ‘전환’을 실험하는 현장을 찾아 나섰다. 명문대-대기업 코스를 향해 모두가 미친 듯 달리는 게 맞느냐며 돌직구를 던지는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과소대표된 청년들의 정치적 발언권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정치에 참여하라”거나 “투표를 하라”는 식은 꼰대식 발언으로 늘 도마에 오른다. 청년들은 “당장 먹고사는 일에서, 혹은 끝없이 내던져지는 경쟁에서 잠시라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해줘야 뭐라도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김주온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예정자)고 말한다. 우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이번에 다 만나지 못한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현재를 견디는 청년들에게 끈질기게 말을 걸어볼 테닷! 청년 여러부~운, 한겨레와 ‘딥톡’(카톡으로 진지한 소통을 하는 것) 안 하실래요? <끝> 황보연 최우리 박승헌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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