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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03 20:26 수정 : 2016.02.04 09:31

당근케이크

[매거진 esc] 조은미의 빵빵빵

나는 당근이 싫다. 어렸을 땐, 진짜 토 나오게 싫었다. 어쩌다 실수로 먹으면 “우웩” 소리가 절로 났다. 그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물론 모를 리 없다), 엄마는 오만 가지 반찬을 당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오징어볶음에도, 닭찜에도 당근은 누리끼리한 색깔에 녹초가 된 몰골로 누워 있기 일쑤였다. 심지어 물김치엔 카네이션꽃 모양으로 깎은 당근이, 당근 아닌 척 동동 떠다녔다. 엄마 몰래 당근 골라내다 어린 시절이 다 갔다. 나의 젓가락질 실력과 순발력을 키운 건 8할이 당근이었다.

그런데 내가 미쳤다. 당근과 사랑에 빠졌다. 바로 당근케이크(사진)다. 늦게 배운 ‘덕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그 꼴이다. 누구냐? 케이크에 당근 집어넣을 생각을 한 이가? 누군진 모르지만, 천재인 건 알겠다. 어쩌다 당근이 케이크가 됐냐면, 이게 다 ‘꿩 대신 닭’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대타로 나선 선수가 홈런도 날리고 하는 법이다. 당근케이크는 중세 때 태어났다는 설이 유력하다. 중세는 지금과 달랐다. 당근이야 천년 전 유럽에 건너온 채소라 다를 게 없는데, 설탕의 지위가 지금과 달랐다. 아랍인이 유럽에 막 설탕을 들여온 터라, 설탕이 귀했다. 귀한 설탕 대신 단맛 나는 당근을 썼다. 당근푸딩이 생겼다. 이게 당근케이크 탄생 설화다. 태초엔 크림을 얹지 않았다.

당근케이크를 제대로 살려낸 건 영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였다. 전시라 물자가 부족했다. 영국은 배급 정책을 폈다. 그래도 부족했다. 영국 정부는 설탕 대신 당근을 배급했다. 심지어 당근 먹기 장려 운동도 폈다. ‘아이스크림 말고, 당근’ 기치 아래, 아이스크림인 척, 당근을 통째로 핫도그처럼 나무 스틱에 꽂아 보급했다. 영국 아이들은 하드를 핥는 대신, (불쌍하게도) 당근을 핥았다.

하지만 아무리 당근을 씹으면 뭐하나? 디저트는 디저트다. 설탕 없다고 디저트를 포기할 순 없다. 원래 없으면 더 갖고 싶다. ‘꿩 대신 닭’이다. 모자라는 설탕 대신 당근을 벅벅 갈아 넣은 당근케이크를 (별 기대 없이) 만들고 먹어보고는, ‘왜 이리 맛있어?’ 하지 않았을까? 친구가 등 떠밀어서 투덜대며 만나본 남자가 첫인상은 진짜 별로였는데, 만나볼수록 매력이 터진 격이다. 당근케이크는 영국인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2011년 영국 <라디오 타임스>에 따르면, 영국인은 당근케이크를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로 뽑았다. 영국 가정마다 그 집 할머니표 비장의 당근케이크 레시피 하나쯤 있다는 전설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맛있는 케이크 다 두고, 당근케이크가 최고라니? 역시 음식의 불모지라는 영국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까봐 말하는데, 그거 아니다. 미국도 당근케이크에 매혹당했다. 당근케이크가 미국에 상륙한 건 대략 1960년대로 알려졌다. 처음엔 그저 신기한 케이크였다. “무슨 케이크가 채소 케이크야?” 첫 반응은 호기심이었고, 두번째 반응은 “그런데 맛있어”였다. 급기야 당근케이크가 출현한 지 10년도 지나지 않은 1970년대에 ‘미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 베스트 5’에 당근케이크가 뽑혔다.

조은미 빵집 ‘메리 케이트’ 주인장
이 케이크는 심지어 기념일도 있다. 매년 2월3일은 ‘내셔널 당근케이크 데이’다. 당근을 저주하던 흑역사의 추억과 그로 인해 생긴 밥상머리 잔혹사를 나누며 당근케이크를 음미하면 딱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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