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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은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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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조은미의 빵빵빵
계란을 삶았다. 껍질을 까려는 찰나, 갈등이 휘몰아친다. 어디부터 까지? 비교적 뾰족한 쪽? 둥그렇게 넓적한 쪽? 결정장애는 나를 계란에도 흔들리게 한다. 할 수 없다. 이럴 땐 가족의 머리를 빌려 까는 수밖에. “퍽” 소리가 난다. 계란 껍질이 송중기의 미소에 감전된 마음처럼 깨진다. 가족의 분노 조절 장치도 깨진다. 이게 다 걸리버 때문이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다. 걸리버가 어쩌다 릴리퍼트란 나라에 갔다. 거기선 계란 때문에 싸웠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두 정당이, 고작 계란 갖고 싸웠다. 어느 쪽 먼저 깰 것이냐? 계란의 좁은 쪽? 넓은 쪽? 그것이 문제였다. 선택이 문제다. 스콘을 구웠다. 진짜 영국 스콘이다. 비스킷이 아니다. 누가 영국 빵 아니랄까봐 <오만과 편견>의 영국 남자 다시를 닮았다. 겉은 파삭파삭 무뚝뚝하지만 속은 보들보들 촉촉하다. 무슨 빵이, 훈내가 난다. 훈내가 날아갈세라 스콘을 살포시 갈랐다. 반을 가른 스콘에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잼을 바를 시간이다. 얼그레이 티도 우렸다.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잼을 바른 스콘엔 홍차가 아름답다. 이게 바로 영국인이 사랑하는 ‘크림티’다. 티 하나로 백작부인 티를 내고 싶은 내가 사랑하는 ‘크림티’다. 여기엔 우유의 유지방을 농축한 크림으로 오로지 영국, 그것도 데번과 콘월 지방에서만 나는 클로티드 크림이 빠지면 안 된다. 영국 남자를 능가하는 매력덩어리 영국 크림인 클로티드 크림을 바르려는 찰나, 잠깐! 버터나이프를 든 손에 경련이 인다. 뭘 먼저 바르지? 클로티드 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딸기잼을 바를까? 그게 바로 영국 데번 스타일이다. 데번 가라사대 “그래야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바를 수 있다”고 했다. 아니다. 딸기잼을 먼저 바르고 그 위에 클로티드 크림을 바를까? 그게 바로 영국 콘월 스타일이다. 콘월 가라사대 “그래야 크림이 흘러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어렵다. 이것은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잼의 치열한 위아래 논쟁이다. 스콘을 둘러싼 애증의 삼각관계다. 영국인도 아직 이것을 결정하지 못했다.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설사 여왕님의 명령일지라도, 데번파와 콘월파는 굽히지 않는다. 탕수육 소스 부먹(부어먹기)파와 찍먹(찍어먹기)파가 굽히지 않듯이. 오늘은 데번 스타일이다. 데번에서 만든 클로티드 크림을 먼저 스콘에 듬뿍 발랐다. 꾸미지 않은 우유 그대로의 담백한 버터 향이 입안에 가득 찼다. 선택은 끝났다. 방황도 끝났다. 잠시지만, 선택할 자유는 멋지다. 뭘 선택하든 선택할 자유는 그대로 멋지다. 선택할 수 있을 때 나는 자유다. 1000년 전, 데번 태비스톡의 베네딕트 수도원 수도사는 노동자들에게 빵을 나눠줬다. 그때 수도사는 빵에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잼을 같이 발랐다. 그게 시작이었다. 데번에 남았다는 기록엔 그렇다. 수도사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때 그는 뭘 먼저 발랐을까? 나는 일찍이 식빵에 딸기잼과 마요네즈를 발라 먹었다. 내가 뭘 좀 알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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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미 빵집 ‘메리 케이트’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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