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조은미
|
[매거진 esc] 조은미의 빵빵빵
의술과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빵엔 국경이 있다. 멋 부리지 않은 납작한 스타일에서 왠지 심플한 멋이 흘러나오는 ‘치아바타’(차바타)나 ‘포카치아’(포카차)는 이탈리아 빵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빵이 지혜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깨를 뒤집어쓰질 않나, 종류도 다양하고 이것저것 끼워 넣고 발라 먹고, 오만 가지 변신이 가능한 ‘베이글’은 당연히 뉴욕, 아니아니 미국이다. 남북전쟁 때 링컨이 이끄는 북군을 승리로 이끈 건 실은 북군이 소유한 빵이었다. 링컨은 “빵은 면화보다 강하다”고 했다. 잡곡인 팥을 유럽에서 들여온 빵 속에 집어넣어, 일찍이 동서양의 만남을 빵에 실현한 퓨전 빵의 원조인 단팥빵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에 단팥빵 없는 빵집은 거의 없지만, 유럽에선 단팥빵 있는 빵집이 없다. 이제 일본에선 짭조름한 명란까지 ‘바게트’에 얹었다. 조금 있으면 스시빵까지 나올 태세다. 바삭바삭한 껍질이 기가 막힌 바게트나 늙은 호박처럼 생긴 둥근 모양의 ‘캉파뉴’는 프랑스 빵이다. 지금의 프랑스를 만든 프랑스혁명에서 빵은 주연배우였다. 사람들은 당시 왕인 루이 16세를 ‘빵장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장수 마누라’라 불렀다. 프랑스혁명 당시 프랑스 민중의 주요한 인사말은 “빵이 부풀어 오르고 있네”였다. 그들이 바스티유에 쳐들어갈 때 내지른 외침은 “우리에게 빵을 달라”였다. 그때 빵 한 덩이 값이 노동자 평균 일당의 90%에 달했다. 하루 종일 일해도 고작 빵 한 덩이 구할까 말까였다. ‘빵’ 하면 프랑스지만, 아이러니한 건 프랑스인은 집에서 빵을 굽지 않는다. 미국 티브이 요리사의 원조 격인 ‘줄리아 차일드’가 처음 프랑스 요리책을 쓸 때 제일 곤란한 게 그거였다나? 프랑스 가정에는 빵틀조차 없기 일쑤다. 집 근처에 신선한 빵을 아침마다 파는 불랑주리가 있는데 뭣하러 빵을 굽겠나? 프랑스에선 지금도 동네 빵집인 불랑주리가 꼭두새벽이면 문을 연다. 프랑스인들은 아침에 먹을 바게트를 사러 아침마다 불랑주리에 간다. 다만, 아침에 바삭하고 속이 말랑한 바게트도 저녁이면 돌덩이가 된다. 하지만 딱딱한 빵도 용도가 다양하다. 치아를 부러뜨리는 데만 쓰지 않으면 된다. 딱딱한 바게트는 야구방망이로 쓸 수 있고, 딱딱한 캉파뉴는 축구공으로 쓸 수도 있다.
|
조은미 빵집 ‘메리 케이트’ 주인장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