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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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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조은미의 빵빵빵
<또 오해영>(티브이엔의 드라마)? 이름 하나 같았다고 오해받아 인생이 꼬이고 바뀌는 두 여자가 벌이는 오해 파노라마를 보자니 마음이 짠하다. 내 이름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오해영’은 두 명밖에 없기라도 하지. 빵계에도 이런 예가 있다. 푸딩(사진)이다. 블랙푸딩? 또 푸딩? 영국에서 블랙푸딩이라도 주문했다간 유럽산 소 피의 쓴맛 좀 보는 수가 있다. 블랙푸딩은 초콜릿푸딩이 아니다. 이름만 푸딩이지, 유럽 버전 순대다. 소나 양, 돼지 피로 만든 길쭉한 소시지다. 또 있다, 이런 푸딩. 영국판 셜록 홈스 드라마인 <셜록: 유령신부>에서 셜록의 형 마이크로프트는 소파에 파묻히듯이 앉아 말한다. “푸딩(pudding)이나 먹어야지” 그러더니 앞에 주르륵 놓인 디저트 더미에서 거대한 빵덩어리 같은 거 하나를 손으로 덥석 집는다. 여기서 잠깐. 어? 우리가 아는 지식에 따르면 푸딩은 절대 손으로 집을 수 없다. 달달한 계란찜 같은 푸딩을 어찌 손으로 집어? 손이 국자라면 모를까. 그런데 영국 남자 마이크로프트는 푸딩을 손으로 집어 뭉텅 베어 먹는다. 유럽이나 영국에선 그게 푸딩이다. 우리가 푸딩으로 아는 푸딩, 깃털보다 가볍게 찰랑찰랑 흔들리며 입안에서 사르륵 녹는 넌 누구냐? 그건 프랑스어로 ‘크렘 카라멜’ 또는 ‘크렘 브륄레’라고 부르는 ‘베이크드 커스터드’다. 달걀과 우유나 생크림을 설탕과 섞어 만든 커스터드를 오븐에 오랜 시간 뭉근히 구운 디저트다. 들어간 재료 봐라. 아기 뺨보다 부드럽고 촉촉하다. 디저트계의 ‘샤랄라 유리공주’과다. 그걸 우리는 또 푸딩이라 부른다. 유럽에서 푸딩이 서해안 거친 파도에도 꿈쩍 않을 등대처럼 생긴 빵 탑이라면, 아시아에서 푸딩은 말랑말랑 보들보들한 솜사탕 젤리다. 푸딩은 명성을 떨치던 불세출의 천재 프랑스 셰프 한 명이 불현듯 떠올린 디저트가 아니다. 푸딩의 시작은 소박했지만, 탄생은 절박했다. 전쟁이 문제였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영국은 당시 잘나가던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바다에서 일전을 치렀다. 전쟁에선 언제나 식량 조달이 문제다. 그렇다고 배에 식량을 잔뜩 실을 수도 없다. 배에 실을 양이란 빤했다. 먹다 남은 음식? 그게 뭐냐? 먹다 남아 돌덩이가 된 빵도 이빨이 부러질지언정 먹어야 할 판이었다. 요리사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딱딱한 빵을 부활시킬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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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미 빵집 ‘메리 케이트’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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