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27 19:10
수정 : 2016.07.27 20:57
[매거진 esc] 조은미의 빵빵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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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트 타탱. 조은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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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학교 다닐 때다. 설탕 시럽을 끓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시럽이 미쳤나? 아무리 끓여도 끓지 않았다. 이 정도면 지글지글 끓어서 냄비 옆에 좀 타닥타닥 튀어주고 캐러멜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2인 1조 수업이었다. 다른 조 친구들은 이미 설탕 시럽을 다 만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눈치 100단인 셰프가 딱 우리 옆에 와서 섰다. 내 얼굴은 나랑 한 조인 뉴질랜드인 여자 친구의 머리색처럼 노랗게 변색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우리가 씨름 중인 마법의 시럽, 끓지 않는 시럽을 본 셰프가 조용히 물었다. “이 설탕, 어디서 떠왔어?” 친구가 조리실 한곳을 가리켰다. “저쪽이요.” 그러자 셰프가 마치 지구상에 존재하는 새로운 멍청이 그룹이라도 발견한 양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거, 소금인데?”
아악! 이 일 이후 난 소금이 싫다. 지금도 소금만 보면 뜨끔하다. ‘소금물 트라우마’다. 피클 만들려고 소금물 끓이다가도 화들짝 놀라 확인한다. 나 지금, 설탕물 끓이는 거 아니지?
그때 실수는 실수로 끝났다.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 아니다. 만약에 실수로 설탕 대신 끓인 소금물로 과자를 만들었는데, ‘이런 맛 처음이야’ 더하기 ‘그런데 너무 맛있어’라는 평가를 받았다면? 자신의 실수에 놀란 뉴질랜드 친구가 그때 연신 딸꾹질을 해대고, 누군가 그 과자에 ‘뉴질랜드의 딸꾹질’이란 이름을 붙였다면? 물론 이런 소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전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원래 될 인간은 거미에 물려도 초능력이 생기고, 구두 한 짝을 잃어버려도 근사한 왕자가 생긴다. 일이 될 땐, 수녀님이 뀐 방귀도 달콤하다.
옛날, 프랑스 사부아 지방의 수도원. 수녀님이 슈(제과제빵의 기본 반죽)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수녀님도 피할 수 없는 생리적 현상이 터져 나왔다. 방귀다. 너무 놀라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수녀님은 일을 내셨다. 들고 있던 슈 반죽을 끓고 있던 기름에 떨어뜨렸다. 수녀님도 사람이신지라, 아마 생각하셨겠지. ‘망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기름에 빠뜨린 반죽이 순식간에 퐁퐁 부풀어 올랐다. 수녀님은 궁금했다. 꺼내서 드셨다. 아니, 이럴 수가. 맛이 깡패, 아니 맛이 기가 막혔다. 아마도 수녀님은 “신이여. 정말로 내가 이걸 만들었나이까?”라고 외치시지 않았을까? (물론 튀기면 뭐든 맛있다.) 아무튼 방귀의 마법, 아니 전화위복으로 과자가 탄생했다. 바로 ‘페드논’(Pet-de-Nonne)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수녀의 방귀’다. 역시 프랑스는 독특하다. 프랑스인의 독특한 유머감각을 누가 말리나? 그래도 그렇지. 먹는 거에 ‘수녀의 방귀’라니. “‘수녀의 방귀’ 먹을래?” “‘수녀의 방귀’ 맛있어.” 생각만 해도 향긋하다. 이름 갖고 누가 뭐라 그랬는지, 수녀님의 우아한 다른 이름도 있다. ‘수피르 드 논’(Soupir de Nonne)이다. ‘수녀의 한숨’이다.
프랑스인이 원래 이런 실수를 잘 하나? 프랑스인이 과자의 역사에 일으킨 전설의 실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894년 프랑스의 한 지방에 타탱 자매가 작은 호텔 하나를 세웠다. 호텔에선 손님들에게 식사도 제공했다. 하루는 타탱 자매 하나가 사과 타르트를 구웠다. 다른 한 명이 부엌에 들어와 오븐에서 타르트를 꺼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팬 안에 타르트를 거꾸로 뒤집어 넣었다. 타르트는 원래 바삭바삭한 타르트지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사과를 얹는다. 그런데 거꾸로 사과를 먼저 깔아버렸다. 망했다. 타탱 자매는 달랐다. 일단 먹어봤다. 그런데 이럴 수가? 맛이! 진짜 맛있었다. 바닥에 깔린 사과에 설탕이 캐러멜처럼 녹아내려 엉겨 붙어서 더 맛있는 타르트가 탄생했다. 마침 미식가이자 프랑스 지방 요리 연구가인 퀴르농스키(Curnonsky)가 와 있었다. 그는 이 새로운 사과 타르트에 폭 빠졌다. 파리에 돌아가 이 타르트를 널리 알렸다. 바로 ‘타르트 타탱’이다. 타탱 자매의 ‘전화위복 타르트’다. 실수는 도리어 ‘운명의 한 수’가 됐다. 전설의 실수다. 실수도 이러면 할 만하다. 그래서 말인데, 나도 언젠가는 이런 실수 하나 하고 싶다.
글·사진 조은미(페이스트리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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