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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24 20:05 수정 : 2016.08.24 20:10

[매거진 esc] 조은미의 빵빵빵

‘샤를로트 로얄’ 케이크. 조은미 제공
인도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은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은 누구나 만들지만, 이건 좀 달랐다. 예뻤다. 예뻐도 너무 예뻤다. 2만명이 꼬박 22년을 달라붙어 만들었다고 한다. 타지마할이다. 예쁘게 잘 만들었으면 됐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잘 만들었다니, 수고했다”라고 말하면서 보너스를 얹어주진 못할망정, 샤 자한은 만든 사람들 손목을 모조리 댕강 잘랐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까봐. 권력을 지닌 이가 미치면 정말 답이 없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나 잘하지.

18세기 말 영국 왕 조지 3세는 아내가 살아 있을 때 그녀에게 잘했다. 어찌나 잘했는지 자식을 9남6녀(무려 열다섯이다)나 두었고, 특별한 케이크도 선사했다. 케이크에 왕비 이름을 붙였다. 그게 ‘샤를로트 로얄’(Charlotte Royal) 케이크다. 샤를로트 왕비는 자기 이름을 딴 케이크를 먹고 기분이 어땠을까? 물론 음식에 이름을 올린 여왕은 여럿 있다. 마르게리타 여왕의 이름을 딴 ‘마르게리타 피자’나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딴 ‘빅토리아 스펀지’ 케이크도 있다. 아무튼 천재 요리사 ‘앙투안 카렘’이 이 케이크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샤를로트 로얄’과 비슷한 이름의 케이크가 또 있다. ‘샤를로트’다. 샤를로트는 손가락처럼 생긴 폭신한 비스퀴(비스킷이나 쿠키)인 ‘레이디 핑거’(손가락 모양의 카스텔라식 과자)를 가장자리에 주르륵 두르고 그 안에 생크림과 과일을 간 퓌레를 섞은 무스나 무스와 비슷한 크림인 바바루아를 담았다. 뚜껑도 씌웠다. 그 당시 유행하던 여성용 프릴 달린 모자 모양을 모방했다. 이 케이크도 왕비와 관련이 있다. 그 모자 이름이 바로 샤를로트였다. 샤를로트 왕비가 써서 유행한 모자라 샤를로트였다.

다시 샤를로트 로얄로 돌아가 보자. ‘이 케이크 모양 어디서 봤는데?’ 추억의 일본 애니메이션 <꼬마 마법사 레미>다. 파티시에 시험에서 레미 팀이 케이크를 만든다. 레미 팀이 만든 이 케이크를 한 조각 먹은 여왕은 눈물을 글썽이며 숲에 걸었던 저주를 풀었다. 여왕은 ‘사랑스런 트루비용’ 케이크라 불렀다. 그냥 케이크가 아니었다. 여왕의 남편이 되기 전에 여왕에게 “나랑 결혼해줘요” 하며 건네준 게 이 케이크였다. 이 ‘사랑스런 트루비용’ 케이크의 정체가 실은 ‘샤를로트 로얄’ 케이크다.

샤를로트 로얄은 반전 케이크다. 보통 케이크는 스펀지가 바닥이나 옆에 있다. 샤를로트 로얄은 정반대다. 크림은 숨어 있다. 스펀지가 크림을 꽁꽁 숨기며 덮었다. 모양도 특이하다. 보통 케이크는 가장 자리가 동그랗든 네모나든 위는 평평하다. 이 케이크는 문어 머리처럼 동그랗다. 수박 반 뚝 잘라 놓은 것 같은 돔 모양이다. 그것도 반들반들한 게 아니라 소용돌이를 이룬다. 만드는 방식도 정반대다. 동그란 볼 안에 잘게 자른 롤케이크를 빙 둘러준다. 그 안에 과일 퓌레와 생크림을 섞어 만든 딸기무스 크림을 채운다. 그리고 뒤집는다.

내가 이 케이크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자, 누군가는 대뜸 물었다. 일본 만화 <원피스>의 ‘악마의 열매’ 아니에요? 최고의 능력자로 만들어주는 악마의 열매! 물론 이 케이크가 그런 ‘악마의 열매’급 케이크가 돼 무지막지하게 팔리길 바랐지만, 주문은 오지 않았다. 악마의 열매 닮은 케이크를 먹었다가 <원피스>의 루피처럼 팔다리가 쭉쭉 늘어나는 고무인간 될까봐 그런 건가?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사바랭’은 이런 말을 남겼다. “새로운 요리를 발견하는 일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것보다 즐겁다.” 새로운 케이크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알고 싶다면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파는 곳이 별로 없다.

플로베르가 말했다. “가장 괴로운 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괴로운 일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이다.” 이건 어떤가? 가장 괴로운 일은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하는 일이고, 다음으로 괴로운 일은 맛없는 것을 먹는 일이다. 샤를로트 로얄은 물론 맛있다.

조은미 파티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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