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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26 19:22 수정 : 2016.10.26 19:51

[ESC] 조은미의 빵빵빵

레몬머랭타르트. 조은미 제공
‘나 혹시 요리 천재 아냐?’ 달콤한 착각에 빠져 혼자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뭘 넣어도 맛있어! 대충 뚝딱 만들었는데, 너무 맛있다. (라면 끓인 이야기가 아니다.) ‘자뻑’도 혼자 하면 달콤하다.

하지만 나보다 더 심한 자뻑으로 불난 집에 부채질한 분이 계셨다. 나를 진짜 요리 천재라고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 분, 바로 우리 엄마다. 웬만한 음식평론가 저리 가라 식이다. 날카로운 비평으로 음식 맛을 단칼에 재단하는 엄마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너는 손맛이 있어.” 그것은 우주 최고의 칭찬이었다. 엄마의 칭찬은 툭하면 내 머리에서 핸드폰 진동음처럼 우우웅 우우웅 소리를 내며 반복됐다. “손맛이… 있어.” 그것은 어느 날 다른 소리로 진화했다. ‘너만 먹기엔 아깝지 않니?’ 남들에게 요리 퍼주기가 취미인 엄마 유전자가 내게도 살아 있었다. 거기다 뭐든 해보길 좋아하는 도전 유전자가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요리? 별거 아냐. 빵 반죽이 별건가? 만두피 반죽하듯이 하지 뭐.

착각도 심하면 병이다. 만두피 생각하고 겁 없이 밀었다가 처절하게 찢어지며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든 게 바로 타르트 반죽이었다. 요리학교 실기시험 때문에 밀고 또 밀었던 타르트 반죽과, 이탈리안 머랭 만드느라 달걀흰자에 붓고 또 부었던 설탕시럽 생각하면 입맛이 뚝 떨어진다.

예전엔 “타르트? 그게 뭔데?” 하는 소리가 주로 들렸는데 최근 들어선 ‘타르트 전문 카페’까지 생길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타르트는 원래 프랑스 제과의 대표 선수 중 하나다. 타르트가 생긴 역사는 길다. 로마시대 접시 모양인 과자 ‘투르트’(tourte)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물론 타르트는 프랑스어다. 미국에선 파이로도 부른다. 독일어는 ‘토르테’다. 다만 독일에선 접시같이 생긴 과자가 아니라 스펀지가 ‘토르테’다. 유명한 독일 케이크인 ‘자허토르테’가 초콜릿케이크다.

유럽에선 이 타르트 사랑이 유별나다. 종류도 많지 않다. 영국의 유명한 음식저술가이며 요리사인 나이절 슬레이터의 자전적 에세이이자 영화로도 나온 <토스트>엔 레몬머랭타르트가 나온다. 눈 내린 몽블랑 산처럼 머랭을 높이 쌓아올린 레몬머랭타르트가 두번째 주인공이다. 영화를 보면, 탄내 나는 토스트만 구워주던 요리솜씨 젬병인 엄마와 달리 새엄마는 휘황찬란한 요리 솜씨로 소년 나이절을 기죽인다. 미운 새엄마의 요리 솜씨를 이기려고 소년 나이절은 죽어라 레몬머랭타르트를 만든다. 새엄마의 레몬머랭타르트를 능가하겠단 일념 하나로 오만 가지 레몬머랭타르트를 만든다. 그렇게 요리사의 꿈은 자란다.

레몬머랭타르트는 정말 맛있는 타르트다. 한입 깨물면 파삭함과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삼단 콤보로 쏟아지며 맛의 폭죽을 터뜨린다. 먼저 맨 위의 솜사탕처럼 덮고 있는 머랭이 어떤 크림보다 달콤하게 입안에서 녹는다. 그 뒤를 이어 새콤한 레몬크림인 레몬커드가 촉촉한 새콤함으로 밀려든다. 그게 끝이 아니다. 곧이어 바닥에 깔린 버터 가득한 타르트지가 파삭하고 부서지며 고소한 버터 풍미를 마구 내뿜는다. 순식간에 나타난 무지개처럼 이 세 가지 맛이 부딪혔다 사라진다. 맛은 예술이다. 만드는 것도 예술이다.

내가 다닌 요리학교에선 이 레몬머랭타르트로 시험을 봤다. 구운 타르트지는 쪼그라들지 않고 적당히 파삭한지, 레몬커드는 너무 묽거나 너무 걸쭉하지 않은지, 셰프들이 심사했다. 더구나 위에 올라가는 새하얀 머랭은 이탈리안 머랭이다. 달걀흰자 위에 뜨겁게 끓인 설탕시럽을 부어서 새하얗게 되도록 저어 만든다. 문제는 끓인 시럽의 온도다. 118℃로 딱 맞춰야 찰랑찰랑 부드러운 이탈리안 머랭이 만들어진다. 레몬머랭타르트를 만드는 반죽은 ‘파트 브리제’다. ‘브리제’는 프랑스어로 ‘부서지다’란 뜻이다. 행여나 쫀득하게 되지 않도록 반죽할 때도 살살 서너번 뭉쳐주곤 서너번 밀어준다. 그걸 타르트 틀에 조심조심 담아 눌러준다. 이 모든 종합예술이 레몬머랭타르트다. 완성된 타르트 바닥은 절대 축축하거나 눅눅해선 안 된다. 타르트는 빵이나 케이크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레몬머랭타르트를 만드는 곳은 많다. 아쉽게도 제대로 만드는 곳은 드물지만.

글·사진 조은미 페이스트리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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