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1.23 19:39
수정 : 2016.11.23 19:58
[ESC] 조은미의 빵빵빵
|
‘르 쁘띠 푸’의 마카롱. 박미향 기자
|
어려서 나는 예쁜 과일만 먹었다. 특히 사과, 한쪽 귀퉁이라도 누르죽죽 거무튀튀하거나 꺼뭇꺼뭇한 흠집이 조금이라도 난 것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반들반들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동그랗고 빨간 사과만 먹었다. 예쁜 사과를 많이 먹으면 예뻐진다고 했던가? 그거, 다 거짓말이다. 아무튼 예쁜 사과만 골라 먹는 내게 언니는 놀렸다. “네가 무슨 백설공주야?” 예쁘지 않아서 서러웠던 그때, 진지하게 고민했다. 납작한 코를 밤마다 빨래집게로 집고 자면 뾰족코가 되지 않을까?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한 여자아이가 그랬다. 더 예뻐지겠다고 밤마다 코에 빨래집게를 집고 잤다. 따라 했으면 예쁜 코는커녕 루돌프 사슴코를 가질 뻔했다.
이젠 예쁜 디저트만 먹는다. 만들다 보니 눈높이가 더 높아졌다. 최소한 디저트계에선 외모지상주가 또렷하다. “생긴 건 못생겼지만 맛은 끝장이에요.” 못생긴 케이크 만들고 이런 말 써봤는데, 미안하다. 이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원래 디저트는 눈으로 먹는 거라고 프랑스인 셰프도 말했다. 그 예쁜 것들 많은 디저트 동네에서 어벤저스급으로 예쁜 애가 마카롱이다. 아나? 너무 예뻐서 먹기 아까운 마음? 요즘이야 널리고 널린 게 마카롱일 만치 너무 흔해 그 미모에 대한 칭송이 줄었지만, 썩어도 준치다. 맨 처음 실물 마카롱을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마카롱 전문 브랜드 ‘라뒤레’였나? ‘피에르 에르메’였나? 그냥 “헉!” 했다. 예뻐서 넋을 잃었다. “아까워서 어떻게 먹어?”를 외치다 한입에 해치웠다.
물론 마카롱은 호불호가 갈리는 녀석이다. ‘달기만 하고 맛없는데 그걸 왜 먹는지 모르겠다’파와 ‘너무 맛있어서 먹다 보면 몇 개 먹는지 모르게 자꾸 먹게 된다’파, 그래서 ‘뒤늦게 칼로리를 생각하며 운다’파 등이 있다. 프랑스를 여행하다 낭시 지방에서 낭시 마카롱을 사 언니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내가 “어땠어?” 묻자, 언니는 입을 삐죽이며 내게 물었다. “달아 죽을 뻔했어. 그게 맛있냐?”
마카롱 하면 프랑스지만, 아이러니하게 마카롱은 이탈리아가 고향이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가문 메디치가의 카테리나 데메디치가 1533년 프랑스 앙리 2세와 결혼하러 프랑스에 올 때 갖고 왔다. 어마어마한 혼수품을 싸들고 파리로 왔던 카테리나 데메디치는 요리사도 데려왔다. 마카롱, 피낭시에, 아이스크림 등도 그때 프랑스로 건너왔다. 마카롱이란 말도 파스타의 일종인 마카로니와 같은 근원을 갖고 있다. 둘 다 ‘고운 반죽’을 뜻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 때, 수녀들이 자신들의 피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마카롱을 만들어 선물했다. 이때 낭시 마카롱이 낭시 전역으로 퍼졌다. 그래서 이 마카롱을 ‘쇠르 마카롱’이라고도 부른다. ‘쇠르’(soeur)는 수녀란 뜻이다.
처음에 마카롱은 단순한 쿠키였다. 두 개를 샌드위치처럼 붙이지도 않았다. 여러 가지 색깔의 쿠키 두 개를 붙이는 마카롱은 1930년께 라뒤레에서 탄생했다. 발명가는 파티시에 루이 에르네스트 라뒤레의 사촌인 피에르 데퐁텐이었다. 피에르는 마카롱 두 개 사이에 초콜릿 가나슈를 살짝 발라 샌드위치처럼 붙였다. 라뒤레는 그 뒤 파리 마카롱의 대명사가 됐다.
마카롱은 사실 재료가 단순하다. 아몬드가루와 곱게 빻은 설탕가루인 슈거파우더, 달걀흰자에 설탕을 넣어 거품 낸 머랭, 이 세 가지다. 이 반죽을 동그랗게 짜서 오븐에 굽는다. 라뒤레가 달걀흰자에 설탕을 섞어 거품 낸 프렌치 머랭을 쓴다면, 피에르 에르메는 달걀흰자에 팔팔 끓인 시럽을 부어 거품을 낸 이탈리안 머랭을 쓴다. 머랭의 차이가 파삭파삭함이나 찐득함의 차이를 만든다.
라뒤레가 전통의 강자라면 피에르 에르메는 ‘전통 마카롱의 혁신가’다. 프랑스 잡지 <보그>는 피에르 에르메를 가리켜 ‘페이스트리의 피카소’라 불렀다. 피에르 에르메는 말한다. “위대한 마카롱은 위대한 슈트와 같다. 고급 마카롱을 위한 시장이 항상 있을 것이다.” 어쨌든 파리 마카롱 매장은 관광 코스다.
조은미 페이스트리 셰프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