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21 19:56
수정 : 2016.12.21 20:08
[ESC] 조은미의 빵빵빵
어렸을 때 나는 산타 할아버지가 교회에 상주하는 줄 알았다.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가면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 집 뜯어진 이불에서 보던 솜을 턱 주변에 주렁주렁 달고 버젓이 빨간 내복을 겉에 입고 선물을 나눠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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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먹는 쿠겔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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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할아버지 뭐야?” 물었더니 엄마가 조용히 일러주셨다. “응, 산타 할아버지.” 산타? 이상했다. 나는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할아버지가 산을 타? 산 왜 타?” 미안하다. 아무래도 나는 아재 개그의 영재였나 보다. 그 아이는 훗날, 자기 아이에게 썰렁한 눈총과 함께 “아재 개그, 재미없거든?” 소리를 듣는 어른으로 자란다. 산타 할아버지, 저는 크리스마스가 무서워요.
매년 얼굴 없는 산타 노릇 하느라 허리가 휘고 거짓말이 늘었다. 하지만 산타가 없다는 걸 알아챌 만큼 자란 아이는 이제 대놓고 “엄마! 나, 닌텐도!” 이러고 선물을 요구한다. “산타 할아버지, 저는 레고가 받고 싶어요. 꼭이요”라며 고사리손으로 카드를 머리맡에 살포시 놔두고 들뜬 얼굴로 잠이 들던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프랑스엔 크리스마스에 먹는 대표적인 빵이 있다. ‘쿠겔호프’다.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알자스 지방의 명물이다. 알자스? 왠지 아는 동네 같지 않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바로 그 동네다. 프랑스어인 모국어를 뺏기고 독일로 넘어가야 했던 그 슬픈 마을. 하지만 알자스는 원래 옛 독일인 프로이센 땅이었다. 자원이 풍부한 전략 요충지로 독일과 프랑스가 서로 갖겠다고 싸운 땅이다. 30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을 이긴 프랑스는 1648년 알자스 지방을 차지한다. 하지만 보불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은 1871년 다시 알자스와 로렌 지방을 차지한다. 이때 이야기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다. 순진무구한 아이 눈으로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뺏기는 아픔을 그렸다. 하지만 사실 <마지막 수업>은 1871년 보불전쟁에 패하고 실의에 빠진 프랑스인에게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 에밀 졸라가 주도해 만든 소설집에 실렸다. 우리가 우리말을 뺏긴 일제강점기를 떠올리며 감정이입해 눈물 흘리며 읽었던 그 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독일 입장에서 보자면 적반하장이다. 독일은 잃어버린 알자스 땅을 200여년 만에 되찾은 셈인데? 물론 알자스 지방은 1차 대전 이후엔 다시 프랑스 땅, 나치 독일 때는 다시 독일 땅,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뒤엔 다시 프랑스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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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겔호프를 만드는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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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스 지방에서부터 독일, 폴란드를 거쳐 오스트리아까지 널리 퍼진 이 빵은 이름도 두 개다. 서쪽에선 ‘쿠겔호프’(kugelhopf, kouglof)라고 부른다. 독일어 ‘쿠겔’(Kugel)은 동그란 원형 ‘구’를 뜻한다. ‘호프’(hopf)는 ‘홉’(hops)에서 나왔다. 옛날엔 빵 반죽을 부풀리는 효모로 맥주를 썼다. 동쪽에선 ‘구겔후프’(Gugelhupf)라고 부른다. ‘구겔’(Gugel)은 모자를 뜻한다. 머리를 폭 감싸는 후드 스타일 모자다. ‘후프’(hupf)는 독일어 효모(Hefe)에서 나왔다.
쿠겔호프는 일단 모양이 독특하다. 어딘가 신비한 은빛 사슴이 뛰노는 크리스마스 숲처럼 생겼다. 소용돌이치는 모양의 왕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톨도톨 음양이 있는 독특한 틀에 반죽을 붓고 구워내기 때문이다. 도자기로 만들어 예쁘게 색칠한 쿠겔호프 틀은 그 자체로 예쁜 그릇이다. 벽에 걸어놓는 장식용으로도 쓴다.
쿠겔호프는 아몬드, 럼에 절인 건포도가 듬뿍 들어간 빵이다. 제빵용 밀가루를 쓰고 이스트를 넣어 부풀린다. 빵맛은 버터가 많이 들어가서 브리오슈와 비슷하다.
쿠겔호프 탄생설에는 ‘동방박사의 선물’ 이야기도 있다. 2016년 전 밤하늘에서 유난히 붉게 빛나는 별을 따라,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가던 동방박사 세 사람은 우연히 알자스 리보빌 마을을 지난다. 그때 그들을 재워준 이는 그 마을에서 토기를 굽던 토기장이였다. 하룻밤 재워준 토기장이에게 동방박사 세 사람은, 토기장이가 만든 모자같이 오목 파인 도자기 그릇에 빵을 구워 선물했다는 설이다. 동방박사가 알자스 지방을 위해 내린 진정한 크리스마스 선물인 걸까? 알 수 없다.
글·사진 조은미(페이스트리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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