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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18 19:42 수정 : 2017.01.18 20:50

크루아상. 조은미 제공

[ESC] 조은미의 빵빵빵

크루아상. 조은미 제공
“뭐야? 투르크 병사 아냐?” 오스트리아인 제빵사는 경악했다. 밤늦게까지 빵을 반죽하다 잠깐 허리도 펼 겸 어슬렁어슬렁 밖에 나갔던 차였다. 멀리서 열심히 뭔가를 파고 있는 투르크(튀르크) 병사를 발견했다. “투르크 병사가 저기서 뭐 하는 거지?” 때는 17세기, 전쟁 중이었다. 오스만튀르크 병사들 움직임이 수상했다. “땅은 왜 파? 시체라도 묻나? 이 밤중에 몰래?” 어둠에 기대 몸을 숨기고 희뿌연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던 제빵사는 깜짝 놀랐다. 병사들이 열심히 파는 땅 너머로 시꺼먼 땅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지금 땅굴 파서 빈으로 야밤에 몰래 쳐들어올 생각?” 오싹했다. 그럼 끝장이었다.

놀란 오스트리아인 제빵사는 헐레벌떡 빵가게로 뛰어 들어왔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알리긴 알려야 하겠는데, 어떻게? 잘못 알린다고 설쳤다간 오스만튀르크 병사들에게 잡혀 목이 댕강 날아갈지도 몰랐다. 튀르크인은 잔인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에라 모르겠다. 빵이나 만들자.’ 애꿎은 빵 반죽을 냅다 테이블 위에 메치던 그가 딱 멈췄다. ‘그래, 바로 그거야.’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얼른 밀가루를 푹 떴다. 딱딱한 버터도 꺼냈다. 새로 빵 반죽을 시작했다.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 제빵사는 뿌듯했다. “그래, 이거야. 꿩 대신 닭이다.” 전쟁터에서 전령 역할을 하는 비둘기 대신 빵을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초승달 모양은 오스만튀르크의 상징이었다. 오스만튀르크 병사가 쳐들어온다는 의미를 담은 셈이다. 여차여차해서 이 빵은 오스트리아군에 전달됐다. 오스만튀르크의 전략을 알아챈 오스트리아는 그들을 물리쳤다. 전쟁은 끝났다. 이 초승달빵이 바로 ‘크루아상’이다. 초승달이 프랑스어로 크루아상이다. 크루아상 탄생설 중 하나를 골라 현장을 재구성하면 내용은 이렇다.

다른 ‘카더라 통신’도 있다. 이건 약간 싱겁다. 전쟁에서 승리하자 기뻐 날뛰던 오스트리아 제빵사들이 빵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승리기념빵, 그게 바로 초승달빵이다. 기쁘게 씹어 먹자 이건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지만, 크루아상은 프랑스빵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오스트리아 공주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에 크루아상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크루아상처럼 반죽하고 모양을 잡는 시간이 긴 빵도 드물다. 먼저 밀가루, 버터, 이스트 등으로 만든 빵 반죽을 넓게 편다. 그 위에 책처럼 납작하고 네모나게 모양 잡아 굳힌 차가운 버터를 올린다. 선물 포장하듯이 반죽을 포갠다. 밀대로 밀어 네모나게 편다. 이걸 다시 접어서 다시 민다. 여러 번 반복한다. 이미 접은 반죽은 냉장고에 넣어놓고 기다려야 한다. 부드러워진 버터를 차갑게 굳히기 위해서다. 이렇게 종잇장처럼 얇게 펴진 버터가 오븐에 구우면 비로소 녹는다. 빵 속살에 켜켜이 무수한 공기층을 만든다. 겹겹이 갈라지는 크루아상 속살의 비밀이다.

난제는 밀기다. ‘밀대로 밀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요리학교 다닐 때 크루아상 반죽을 밀다 다친 친구도 있었다. 차갑고 단단한 반죽을 있는 힘껏 밀대로 밀다가 팔이 훅 미끄러져 대리석 테이블에 쾅 하고 내리꽂혔다. 비명소리와 함께 그 친구는 응급실로 갔다. 크루아상은 반죽을 밀다가 그 친구처럼 종종 다치는 경우들이 생긴다. 다행히 제과점에선 이걸 사람 손으로 하지 않는다. 기계에 넣고 돌려 반죽을 순식간에 밀어 편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다. 크루아상이 바로 그런 빵이다. 만드는 인내는 쓰지만, 결과는 달콤하다.

조은미 페이스트리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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