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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12 20:44 수정 : 2017.04.12 21:04

가토 알람브라. 조은미 제공

[ESC] 조은미의 빵빵빵

가토 알람브라. 조은미 제공
봄날에 변비 걸린 곰처럼 기분이 뚱하다. 악어 똥이 가득한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분이다. 그럴 때 나는 먹는다. 물론 아무거나 먹는 건 ‘에러’다. 증세 악화로 가는 극약처방이다. 나의 특제 처방은 ‘초콜릿 케이크’다. 과학적으로도 말이 된다. 일찍이 초콜릿은 강력한 최음제, 각성제, 피로회복제로 각광받았다. 초콜릿 케이크는 지친 내게 주는 ‘토닥토닥 어깨 두드리기’, ‘쓰담쓰담 머리 쓰다듬기’다.

일본 영화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을 봤는데 나랑 똑같은 인간이 또 거기 있었다. 주인공은 기분이 우울한 날이면 케이크 카페에 혼자 앉아 치즈케이크 큰 거 하나를 다 먹었다. 그 뒤에 우울한 기분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드르륵드르륵 미싱을 돌렸다. 그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나잖아?

내가 아는 최고의 초콜릿 케이크는 ‘가토 알람브라’(Gateau Alhambra)다. 케이크 마니아들이 최고의 케이크는 오스트리아 빈의 ‘자허토르테’가 아니냐고 물을지 몰라 말하는데, 내 생각은 아니다. 이해는 간다. 미안하지만, ‘가토 알람브라’를 못 먹어봤으니 그런 소리를 하는 거다.

처음 이 케이크를 먹었을 때 깜짝 놀랐다. 케이크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는 나도 솔직히 초콜릿 케이크는 별로 안 좋아했다. “너무 달기만 해서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가토 알람브라를 먹고는 초콜릿 케이크에 가진 편견이 와르르 깨졌다. 뭐야? ‘초콜릿 케이크가 안 달아’, ‘아니다. 맛있게 달아’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때까지 초콜릿 케이크에 자주 썼던 표현인 ‘달콤 쌉싸름한 맛’은 그냥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칭찬의 말인 줄 알았는데, 가토 알람브라는 진짜 그랬다. 달콤 쌉싸름했다. 이건 상큼한 첫 키스의 맛이라기보다 죽음을 앞둔, 간절한 마지막 키스의 맛이랄까? 혼자 흥분해 외칠 뻔했다. ‘지금껏 먹은 초콜릿 케이크는 다 사기였어.’ 물론 비밀은 레시피에도 있지만 질 좋은 재료를 쓴 데 있다.

내가 다닌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에서 이 ‘가토 알람브라’ 만들기를 시연해 보여주던 셰프는 싱긋 웃으며 우리에게 단언했다. “단순하지만, 이 케이크 굉장히 맛있어요. 우리 아이 생일 파티 때 저는 이 케이크를 만들어요.” 물론 전문가인 셰프가 한 말이니까 걸러 들어야 한다. 솔직히 단순하진 않다. 스펀지 하나만 해도 다른 케이크 스펀지보다 훨씬 복잡하다. 버터를 크림처럼 만들어서 설탕을 붓고, 달걀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해 따로 거품 내서 섞어줘야 한다. 밀가루, 코코아 가루와 섞을 때 힘 좋게 퍽퍽 섞었다간 망한다. 오븐에서 부풀지 않고 쪼그라들어 초라하고 새까만 고무타이어처럼 될 수도 있다.

잘 구운 스펀지 위에 초콜릿과 생크림을 잘 섞은 초콜릿 가나슈를 붓는다. 또 아몬드로 만든 반죽 덩어리로 장미도 만들어 살포시 얹어야 한다. 일단 이 케이크는 스펀지 맛부터 굉장하다. 굉장히 많은 양의 버터와 헤이즐넛 가루가 그냥 들어간 게 아니다. 고소하고 달콤하고 쌉싸름한 초콜릿 스펀지가 입안을 폭격한다. 이건 초콜릿 케이크가 아니라 초콜릿 탈을 쓴 빛나는 보석이다.

그런데 케이크 이름에 왜 알람브라가 들어가는 걸까?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하여간 알람브라 궁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케이크란다. 알람브라 궁전에 자라는 장미 때문에 케이크 위에 장미를 얹은 거고, 궁전의 푸르름을 표현하려고 초록색 피스타치오 가루를 뿌렸다고 한다. 스펀지에 대량 투척한 헤이즐넛은 알람브라 궁전 근방에서 주로 생산되는 견과다. 로미오와 줄리엣 급 알람브라의 비극적 로맨스 같은 낭만적인 사연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조사를 하고는 김이 빠졌다. 그래도 이 케이크를 먹는 순간, 알람브라 궁전에서 뛰놀던 추억에 잠긴 공주가 되는 기분이 들어, 그게 어딘가 싶었다. 원래 초콜릿은 사랑의 마약이자, 죽은 열정도 일깨우는 ‘신의 음식’이다. 하루라도 초콜릿을 먹지 않으면 큰일 난 줄 알았다던 괴테는 72살을 앞둔 때에 17살 소녀에게 청혼했다. 그의 구혼은 거절당했지만 그게 다 초콜릿 때문이라고 믿는다.

조은미 페이스트리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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