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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02 19:01 수정 : 2016.09.02 21:13

[토요판] 고민정의 시

나 방
   조기영

어둠의 미로에서
이슬의 출산을
기다리는 밤

하늘 엉덩이는
앞산 천장까지 내려와
꽃을 잉태한 여인처럼
달을 토해내는데

밤마다 달빛을 이다
허리가 휜 골목에서
나방이 가로등을 두드려
낮으로 들어가려 하네

밤은
고향은
실패가 아닌데

너의 탄생이 패배가 아니듯

가지마라
나방


“당신은 나비입니까, 나방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다들 뭐라고 답할까?

나비는 늘 예쁘게 묘사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에서는 자유를, 여러 가지 색깔을 보면서는 아름다움을 말한다. 수천 년 전 장자(莊子)도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를 물었지, 내가 나방인지 나방이 나인지를 묻지는 않았다. <바다와 나비>의 김기림 시인도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는 존재로 나비를 불러냈다. 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나비를 닮고 싶은 표상으로 상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어디 우리 삶이 그런가.

난 아나운서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 직업은 많은 젊은 여성들이 되고 싶어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은 종종 나비로 인식된다. 하지만 정작 난 때때로 스스로를 나방이라고 느낀다.

방송을 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알아보는 사람보다 몰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줌마, 이것 좀 하나 먹어봐요”라고 말하는 과일가게 아저씨.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뭐 하세요?”라고 묻는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난 동네 주민.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같이 사는 남자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이젠 제법 굳은살이 박였을 법한데도 내 마음엔 새살이 어찌나 빨리 돋는지 늘 새롭게 아프다. 내 딴에는 내 색깔을 살려 최선을 다한 방송이었지만 연극 속 행인 1, 2, 3처럼 누가 해도 상관없는 자리로 보일 때, 춤이나 노래 등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만한 특기 없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보여줄 건 그저 멋쩍은 미소밖에 없을 때, 방송 중 말끝마다 덜컹거리고 뻔한 말들만 입 밖으로 나올 때 난 속으로 되뇐다.

‘역시 난 아나운서의 자질이 없어.’

자학이 시작된다. 스스로를 짜증나게 하고 끈적끈적한 기분으로 만든다. 아무리 털어도 깨끗이 떨어지지 않는 바닷가 모래가 온몸에 묻은 것 같은 기분이다. 급기야는 지구 내핵에 가닿을 기세로 땅을 파고 들어간다. 이 순간 난 나방이다.

남의 시선 상관없이 우린 종종 나방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상위 3%에 들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건가요? 라고 하소연하는 수험생,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몇 년째 백수인 취준생, 낮엔 회사에서 넥타이 메고 일하지만 퇴근 후엔 반찬 배달을 하고 있다는 가장. 내가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청취자들의 자화상이다. 나방의 몸부림이다.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힘내라는 뻔한 말만 되풀이해야 하나? 당신 잘못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강연이라도 해야 하나? 그때쯤 이 시가 내 마음을 나방이 가로등에 부딪히듯 요란하게 두드렸다.

고민정 아나운서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비야 동요를 들으며 나비의 꿈을 꿔온 우리. 하지만 현실 속의 내 모습은 나방이기 일쑤다. 부인한다고 존재가 달라지지 않음을 알지만 우리는 자꾸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이 시는 우리를 강한 손아귀의 힘으로 흔들어댄다. 너의 존재 자체가 패배가 아니라고. 그 힘은 단단하고 뜨겁다. 그 팔을 부여잡고 소리내어 울어본다. 지나가는 바람이 귀밑머리를 간지럽히는 걸 느낄 때까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시대에 詩人(시인)이, 詩(시)가 필요한 이유.

고민정 한국방송(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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