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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7 22:38 수정 : 2016.10.23 17:22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11) 환경

내가 어릴 때에는 ‘미세먼지’라는 단어를 모르고 자랐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보면 흙먼지가 일어날 때도 있었지만, 그 먼지는 자연 상태의 먼지였다. 요즘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처럼 화석연료 연소나 산업활동 등에서 발생하는 인공적인 먼지는 아니었다. 최근 기준치 이상의 중금속이 검출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인조잔디니 우레탄이니 하는 것도 없었다. ‘기후변화’니 ‘지구온난화’니 하는 단어도 모르고 자랐다.

그런데 불과 30~40년 만에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얼마 전 미세먼지가 아주 심하던 날, 고등학생인 딸아이는 아침밥을 먹다가 ‘아빠, 나는 평생을 이 미세먼지와 함께 살아야 돼?’라고 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단지 미세먼지만이 문제가 아니다. 주변 곳곳이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자본의 탐욕이 통제되지 않는 순간, 아무것도 안심할 수 없다.

이런데도 30년 전에 비해 지금 청소년들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마시는 공기조차도 안심할 수 없고, 뛰어노는 운동장에서도 중금속에 노출되는 삶을 만들어놓고, 기성세대라는 사람들이 청소년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 수 있나?

이 모든 문제들의 원인은 ‘자본의 탐욕’을 방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행정 시스템에 있다. 기업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시민들의 안전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치이고 정부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치·행정은 자본의 탐욕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수족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제도를 허술하게 만들고, 그나마의 제도도 부실하게 운영한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임무도 다하지 못하는 국가를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자본공화국일 뿐이다.

게다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 어두워진다. 대한민국은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5월16일 미국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공동연구진은 전 세계 국가들을 비교한 ‘환경성과지수’(EPI: 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를 발표했다. 이 발표의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은 공기질 부문에서 전체 조사 대상 180개국 중 173위였다. 호흡을 통해 사람의 폐까지 곧바로 침투하는 초미세먼지(PM2.5) 같은 항목이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뒤늦게 내놓은 대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에 대해서도 강력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해서는 낡은 것만 일부 폐쇄한다는 정도이다. 20개나 더 건설 예정인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해서는 그냥 놔두겠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짓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중단시킬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원전·기후변화는 ‘자본공화국’ 문제
콘크리트 아닌 사람에게 돈 돌아가야

주민배당금·기본소득·원전 폐쇄
대안이 없다기보다 채택되지 않는 것

자본 탐욕 위기, 민주주의로 해결해야
현재 특권구조 깨는 변화 절실히 필요

원전 문제도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에 21개였던 대한민국의 원전 개수는 곧 26기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스리마일, 소련의 체르노빌, 일본의 후쿠시마로 이어진 원전 사고의 재앙은 아직도 수습되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주변의 아동들은 일본의 다른 지역 아동들에 비해 갑상선암 발병률이 몇십배에 달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대한민국처럼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전 세계는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 심지어 지금 우리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중국마저도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을 미래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중국은 재생가능에너지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국가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하는 전력량이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을 넘어섰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토건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영남권 신공항은 백지화되고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이 ‘새만금 신공항’을 거론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적자를 내는 지방 공항들이 수두룩한데, ‘신공항’ 운운하는 것은 개발심리를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 국토가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 국도로 뒤덮이고 있다. 시민들이 주유소에서 휘발유, 경유를 넣을 때 내는 교통·에너지·환경세가 이런 도로 건설에 낭비되고 있다. 요즘에는 민자도로 형식으로 건설되는 것들이 많지만, 결국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 수익을 보장해주거나 토지매입비 등 여러 명목으로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토건사업으로 인한 이익도 결국 대형 건설자본에 돌아갈 뿐이다. 건설경기는 일시적일 뿐, 환경을 파괴하고 예산을 낭비한다. 이런 토건국가 구조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현재의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에서 국회의원들은 ‘자기 지역 토건사업 챙기기’에 몰두한다. 대통령 선거 때에도 후보들은 지역토건 공약을 내세워서 표를 얻으려 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토건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소중한 국가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에게 돈을 써야 한다. 그것이 환경 파괴를 막는 길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은 먹고사는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지만, 재생가능에너지와 관련된 일자리는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독일은 이미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36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녹색이 일자리’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또한 기본소득 같은 새로운 대안도 지속가능한 사회에 맞는 먹고사는 방식이다.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고, 그 소득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재원에 대한 걱정을 하지만, 조세개혁을 하고 토건사업에 낭비되는 예산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돌리면, 재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사실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안이 채택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대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원전을 줄여나가고 있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에너지, 교통, 먹거리 등이 바뀌고 있다. 기본소득 같은 대안도 세계 곳곳에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에서는 35년째 모든 주민들에게 주민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핀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모두 민주주의를 통해 채택된 것들이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같은 국가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좋은 선거제도를 통해 녹색당 같은 새로운 정당이 국회로 진출하여 변화를 만들어낸 독일 같은 사례도 있다.

그러나 유독 대한민국은 이런 흐름에서 비켜나 있다. 정치가 ‘자본’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고, 대기업과 일부 자산계층의 입맛에 맞는 정책들만 편다. 시민들은 투표를 할 때에만 주권자로 대우받을 뿐, 그 외의 시간 동안에는 철저하게 ‘통치의 대상’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결국 문제를 바로잡을 방법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길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지속가능한 사회도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의 개혁도 필요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만들어지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30년이 되어 가는 지금 시점에서 국가 시스템의 개혁이 정말 중요하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려면, 시민들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과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도입되어야 한다. 선거제도를 전면 개혁하여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역에서의 창의적 시도를 가로막는 중앙집권적 국가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분권화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정치 전반에 퍼져 있는 특권구조를 깨야 한다. 이런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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