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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14 18:02 수정 : 2016.08.14 18:54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경관 십년, 풍경 백년, 풍토 천년”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과 중국의 건축, 조경, 토목 분야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건물을 세워놓고 십년을 가꾸면 경관이 되고, 경관을 백년 넘게 보존하면 풍경이 되며, 풍경이 천년을 견디면 풍토가 된다는 뜻이다. “경관은 문화의 소산, 풍경은 자연의 소산”이라는 말도 있다. 도시 고층건물로 형성되는 경관은 인공의 산물이고, 산천초목의 경치는 자연 조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풍토의 경우는 경관은 물론이고 풍경의 한계도 뛰어넘어야 형성될 수 있다. 풍토를 이루려면 풍경도 천년 세월을 버텨야 한다.

그런데 올여름 폭염을 겪고 보니, 지금은 풍토마저 바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금할 수 없다. 이번 더위는 놀라움 자체였다. 경북 경산은 기온이 한때 40.3도로 올랐다고 하니, 뜨거운 사막으로 바뀐 셈이다. 체질적으로 더위를 잘 견디는 편인데도 올해는 나도 작년에 고장난 에어컨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 불길한 것은 무서운 폭염이 올여름만의 현상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절기와 계절 구분이 뚜렷하고 여름에도 더워야 30도를 약간 웃돌던 예년의 한국 기후가 계속되리라고 이제 누가 기대하겠는가. 우리는 지금 풍토 변화가 경관의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두려운 변동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 맥락에서 주목할 것은 이런 변화를 문화가 주도한다는 점 아닐까 싶다. 문화는 자연에 대한 인간적 개입에 해당한다. 기후 변화 같은 풍토상의 변동이 문화의 산물로 보이는 것은 사람의 손길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열대야는 말할 것도 없고, 산골의 이상 고온 현상도 자연만의 변화로 생긴 현상으로 보긴 어렵다. 열대야는 각종 개발로 흙과 풀, 나무가 사라진 도시 지표면에서 복사열이 급증한 결과이고, 산중 고온 현상은 개발로 인해 초원의 사막화가 발생한 중국과 몽골에서 형성된 열파가 한반도로 유입된 결과다.

개발이라고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새로 조성되는 건조 환경도 한 십년 가꿔나가면 좋은 경관을 이룰 수 있다. ‘골목 풍경’이 좋은 예다. 처음 조성된 골목은 아직 경관이 아닐는지 모르나, 세월의 켜가 쌓이면 정경 어린 풍경으로 바뀌곤 한다. 박태원의 <천변풍경> 배경을 이루는 청계천 주변이 작품 안에서 ‘풍경’으로 제시되는 것도 18세기 중엽 영조가 그곳을 보수한 뒤 백년 넘게 사람들의 중요한 삶의 터전으로 보전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 풍경화 전통을 개척한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낮은 땅’이라는 의미의 네덜란드는 해수면보다 낮은 국토를 개간해 튤립 중심의 화훼 농업을 발달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풍경화에 풍차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고즈넉한 네덜란드 농촌은 인조 환경으로 처음 조성되었던 것이 경관으로, 다시 풍경으로 변한 모습이다. 경관을 의미하는 영어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가 네덜란드 말에서 유래하게 된 것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풍경이 된 경관은 수백년이 더 지나면 풍토의 일부를 구성하게 된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건조물이지만 이제는 우주에서도 볼 수 있는 중국 자연의 일부가 되었으니 이미 그 풍토에 속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여름의 폭염을 견디며 생각해보니, 적어도 한국에서는 경관이 풍경으로, 풍경이 풍토로 바뀔 일은 많지 않아 보인다.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당장의 개발에만 골몰할 뿐, 개발된 건조 환경도 경관, 풍경, 풍토로 가꿔 나갈 노력은 거의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몇 년 전 서울 종로의 뒷골목으로 600년 역사를 자랑하던 피맛골을 없애버린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디 피맛골뿐이겠는가.

한국 건축물의 평균 수명은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래서는 우리 국토에서 풍토와 풍경은 물론, 경관도 제대로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풍경과 풍토를 위해서도 경관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년 동안 국토 개발에 몰두해오면서 경관 보전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풍경이 망가지고 이제는 풍토마저 변하게 된 것은 그런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환경의 뿌리인 풍토를 지키려면 경관 차원에서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올여름 기후 변화의 영향을 직접 체험하며 더욱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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