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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0 20:56 수정 : 2016.03.21 11:38

[학생부의 배신ㅣ불평등 입시 보고서]
② 격차의 핵심은 비교과

스펙 경쟁,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

비교과 스펙 중심 학생부 반영 등
특목고·자사고 ‘자기주도학습전형’
대입 ‘학생부 종합전형’과 유사해
각종 경시대회 수상경력 만들려
초등학생들 선행학습에 매달려

지난 4일 대구에서 열린 한 입시업체의 특목고·자사고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스크린에 제시된 입시 정보를 휴대폰 카메라로 찍고 있다. 대구/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어머님들, 서울대가 좋아하는 어려운 과목, 소수 인원 과목, 이런 교과 수업 하는 데가 특목고·자사고예요. (현재 중2가 대학을 가는) 2021학년도부터 고등학교 내신도 90점만 넘으면 다 A를 받는 성취평가제가 시작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무조건 특목고·자사고 가는 게 답이에요.”

지난 4일 저녁 대구에서 열린 한 입시업체의 ‘특목고·자사고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 400여명은 대형 스크린에 중학교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항목 등 주요 자료가 뜰 때마다 연신 휴대폰 카메라로 화면을 찍었다.

“중학교 학생부 관리의 성공의 열쇠는 어머님이 학생과 한편이 돼서 선생님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특(세부능력·특기사항)에는 반드시 수학·과학 선생님들의 좋은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문 따고 들어가야 할 선생님이 되게 많구나 싶으시죠?” 학생부 관리에 있어 학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는 발언이 계속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엄마들은 성격도 좋아야 해”라는 자조가 터져나왔다.

이날 설명회에 중1 아들과 함께 참석한 한 학부모는 2시간여의 설명회가 끝난 뒤 “방향을 못 잡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7살 때부터 원소기호를 외우고 화학 쪽에 특기를 보여온 아들의 과학고 진학을 위해 중학교 입학과 함께 직장을 그만뒀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때 내가 일하느라 영재교육원 같은 데 신경을 못 써줬다”며 “소질이 있는 것하고 입시 결과랑은 별개라 엄마가 모르면 안 되는 것 같다”며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소위 ‘명문대’ 입학에 특목고·자사고가 유리하다는 사실이 학부모들 사이에 ‘정설’로 자리잡으면서, 입시경쟁은 중학교, 초등학교에서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특목고·자사고의 소위 ‘자기주도학습전형’은 비교과 스펙을 중심으로 학생부를 반영하고 자기소개서와 면접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대입의 ‘학생부 종합전형’과 상당히 유사하다. 일종의 대입 ‘예비고사’인 셈이다.

■ 사교육 스펙쌓기, 중학교부터 시작 서울 강남구의 ㅇ중은 ‘제니’(GENY·세계화교육문화재단 청소년단체)단을 운영한다. 모의유엔총회 3회, 청와대 견학 및 테이블매너 교실에서부터 비보잉·마임 등의 예체능 활동까지 모두 7가지 비교과 활동을 패키지로 묶어 단원들에게 제공한다. ㅇ중 학부모 ㄱ(46)씨는 “학부모들이 선행학습뿐 아니라 이런 비교과 스펙을 쌓는 데도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ㅇ중은 고등학생들이 대입을 위해 ‘과제연구’(R&E)를 하는 것처럼 방학 때 학생들에게 과학탐구보고서나 소논문을 쓰는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 ㄱ씨는 “대학생도 못 쓰는 소논문을 중학생이 쓴다”며 “학원에 가면 주제를 대여섯 개 정도 주고 아이가 고르면 일대일 맞춤으로 완성까지 도와준다. 학원에서 써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ㅇ중이 스펙에 신경을 쓴다는 소문이 난 뒤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ㅇ중에 가려는 학부모들도 생겨나고 있다.

강남구 학부모 ㄴ(44)씨는 “중학교 1학년이 되면 이과로 갈 애들은 과학이나 수학 학원을 추가하고 문과로 갈 애들은 전국 영어토론대회 준비를 위해 토론학원을 추가로 다닌다”며 “학생부에 외부 대회 수상 실적을 적을 수는 없지만 다양한 시사 내용을 접할 수 있어서 해본 애가 안 해본 애보다 면접에서 유리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 “입시제도 바뀌면서 초등학생이 직격탄” 송파구 학부모 ㄷ(47)씨의 자녀는 6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중학교 1학년 수학에 대한 선행학습을 시작했다. “애가 학교에 가서 ‘나 중학교 1학년 수학 한다’고 했더니 반 애들이 다 웃더래요. ‘이제야 그거 하냐’는 거죠.” ㄷ씨는 “함께 모임을 하는 한 학부모의 초등학교 5학년 아이도 수학·과학 선행을 시작했는데, 밤 10시에 학원 수업이 끝나면 새벽 1~2시까지 독서실에서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 새끼 과외를 붙여서 자습을 시키더라”며 “수시전형이 확대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게 초등학생이다. 초등학생들 하는 거 보면 정말 괴담 수준”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대입 학생부 종합전형 확대→특목고·자사고 유리→특목고·자사고 입학을 위한 사교육 필요’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선행학습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각종 경시대회 등 비교과 ‘스펙’ 때문이다. 학생부에 외부 대회 입상 경력을 적을 수 없음에도, 학부모들은 “학원에서 특목고·자사고 면접 볼 때 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준비하면서 뭘 느꼈다는 건 적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학부모 ㄷ씨는 “특목고에 못 가더라도 중학교 때 특목고·자사고 입시를 한번 준비해보면 입시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대입을 준비하기 훨씬 수월하다고 학원에서 말하더라”며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홀린 듯이 돈을 내게 된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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