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의 배신ㅣ불평등 입시 보고서]
④ 대안은 학교에 있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수시모집을 대폭 축소하겠습니다.”
국민의당은 이번 20대 총선에서 ‘수시모집 비중 축소’를 교육 분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전국 4년제 대학은 2016학년도 입시에서 전체 모집정원의 평균 70%를 학생부·논술 등이 중심이 되는 수시모집으로, 30%를 수능 중심의 정시모집으로 뽑았다. 이태흥 국민의당 정책실장은 “다른 공약은 발표한 뒤 찬반이 있는데, 수시 비중을 축소하겠다는 공약은 발표한 뒤 민원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격려 전화가 쏟아졌다”며 “수시모집으로 입시제도가 복잡해지면서 스펙 쌓기 등 여러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는 데 대해 학부모들이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국민적인 공론화를 통해 수시 비중을 어느 정도로 줄일지 구체적인 입시제도 개선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학교소개자료 등 다양한 전형자료를 반영하는 수시모집에 대한 학부모의 피로감이 고조되면서, 시험 점수 하나로 대학 진학이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계층 쏠림 현상이 덜했던 ‘학력고사 입시’나 ‘수능 입시’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교육전문가들 쪽에서는 사회적 양극화가 심각한 현 상황에서 시험 성적 하나로 학생을 선발할 경우 교육 불평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중·고교 자녀를 키우는 40·50대 학부모는 대부분, 역대 가장 단순한 입시였던 ‘학력고사(1982~1993년 시행) 세대’다. 학력고사 성적과 고교 내신 성적만으로 대학에 갔던 1982학년도(1963년생)~1993학년도(1974년생)는 해방 이후 대학 입시에서 대학별 본고사가 치러지지 않은 유일한 시기였다. 1986학년도 이후 대학별로 면접과 논술을 실시하기는 했으나 실질 반영률이 낮아 당락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학부모들이 현행 입시에 대해 “너무 복잡하고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불만과 불신을 보이는 배경에는 이런 입시 경험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시 이런 단순한 입시제도가 안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80년 7월30일 실시된 전두환 정권의 강력한 ‘과외 금지 조처’(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 ‘교육 정상화 및 과열 과외 해소 방안’)가 있었다. ‘단순한 입시제도’만 있었던 게 아니라 ‘사교육 금지’가 병행된 것이다. 하지만 2002년 헌법재판소는 이를 규정한 학원법 등에 대해 “자녀교육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현재 사교육을 금지할 수 없는 이상 수능이나 학력고사와 같은 객관식 시험은 계층 격차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강태중 중앙대 교수(교육학)는 “수능은 문항 양식이나 출제 방향이 사전에 공개된 시험이라 진정한 교육적 성취 없이도 돈을 많이 투자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시험”이라며 “점수 1점 단위로 아이들을 변별해주니 마치 투명하고 객관적인 도구라고 생각하는데, 수능 점수 차이를 학생의 실력 차이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입학본부 관계자는 “학력고사나 수능 방식은 학부모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부담감을 해소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사교육으로 대비가 가능한 특목고나 강남 3구 학생들이 더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일반고가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학생부 취지를 잘 살리고 있는 삼각산고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대학이 이를 반영해 선발하도록 보완해야지, 현재 부작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능·정시 중심으로 간다면 결국 일반고 학부모들이 손해”라고 말했다.
김경근 고려대 교수(교육학)는 “수시 비중 확대, 정시 비중 축소는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계층 격차나 교육기회 확대 측면에서 세밀하게 분석하고 연구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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