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3.03 21:39
수정 : 2016.03.3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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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윤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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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한국여성민우회 공동기획
‘해보면’ 달라져요
<3> 편견에 대항하는 ‘첫사람’ 되기
외국인 많이 사는 동네는 좀 그렇지 않아요? 이주노동자 100만명 시대. 오랜 세월 ‘단일민족’을 강조해온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여전히 낯선 소수자다. 이들에 대한 편견은 고정관념이 되고, 혐오와 공포(포비아)로 이어져 구성원들을 가르는 벽을 만든다. 1994년까지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이주에 대한 찬반 여론(한국갤럽 조사)은 50 대 49 정도로 비슷했지만, 20여년이 지난 2015년 조사에선 부정적 의견이 54%로 긍정 의견(39%)을 앞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한겨레>와 한국여성민우회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편견과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첫 사람’이 돼 보자고 제안한다.
구로동 주민 김희영씨의 편지
조선족 등에 비하발언 자주 들어
살고있는 사람은 아무 걱정 없는데…
편견과 차별에 단호한 대처 다짐
한 택시기사 “잘 모르고 말해 미안”
누군가 나서야 다른 사람도 말하죠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구로구 구로4동에 사는 주민 김희영(32)이라고 합니다. <한겨레>와 한국여성민우회의 ‘해보면 달라져요’ 공동기획 1, 2회를 보고, 평소 제가 하고 있는 ‘해보면 달라지는’ 실천을 소개하고자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서울 은평구에서 혼자 살던 저는 3년 전 여동생과 같이 살기 위해 이사를 마음먹었습니다. 여동생과 제 직장의 중간지대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인근에 집을 구해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런데 이사 후 예상치 못한 ‘불편함’이 찾아왔습니다. 퇴근길에 종종 택시를 타는데, 남구로역으로 가자고 할 때마다 기사님들로부터 “아, 거기 ‘짱깨’들 사는 데요?” “잡종들 많아서 힘들죠?” “거기 범죄율 높으니까 집 코앞까지 데려다 줄게요” “여자분이 위험하시겠어요” 같은, 이주민들에 대한 온갖 비하의 말을 듣게 된 겁니다. 이곳에 중국 동포가 많긴 하지만 한번도 중국인 때문에 피해를 입은 적이 없는 저로선 도대체 왜 이런 말을 쉽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순간의 불쾌함만 참으면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2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11년 넘게 이 동네에 사는 이웃 언니에게 슬쩍 물었습니다. “언니, 이 동네로 이사 온 뒤로 사실 좀 걱정이 돼요. 주변에서 위험하다고 하는데 괜찮냐”고. 그랬더니 그 언니는 “그건 다 편견이고, ‘위험하다’는 것도 실체는 없다”고 답하더군요. 언니의 단호한 대꾸에 저도 그간 제 마음속에 있던 편견과 불안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지난해부터 이주민들에 대한 비하성 발언을 하는 기사님들께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잡종이라뇨,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되묻거나 “이 동네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한 번도 피해 입은 적이 없어요” “범죄율이 진짜 높은지 따져봐야 알지요”라고 답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말이 없습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기도 하고요. ‘저 여자, 중국인인가?’ ‘걱정으로 한 말인데 왜 저러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 말이 기사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저마저 가만있으면 기사님은 계속해서 구로동에 대한 편견, 중국인에 대한 비하를 멈추지 않고, 자신의 말이 왜 잘못됐는지 생각조차 안 할 것 같아서 이제는 용기를 내서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 참, 한번은 제 말에 답변하는 기사님을 만난 적이 있네요. 80대로 보이는 어르신이었는데, 제 반박에 처음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시더니 이내 “나이든 사람이 잘 모르고 얘기해서 미안하네”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사실, 저도 기사님들께 면박을 주기 위해서 꼬박꼬박 ‘지적질’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때론 저도 우리 동네에 사는 중국인들과 문화적 이질감을 느낄 때도 있고요. 하지만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무작정 선을 긋는 것이 우리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웃 언니는 제게 ‘첫 사람’인 것 같아요. 왜 있잖아요. 주변에서 작은 오해,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마주했을 때 문제제기 할 줄 아는 첫 사람 말이에요. 대부분 ‘별거 아닌데…’ ‘귀찮아’ ‘이 순간만 참자’ 하고 그냥 넘어가잖아요. 일일이 따져 묻다간 공연히 까다로운 사람처럼 비칠까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한 사람이 먼저 나서서 편견임을 인지하고 분위기를 바꾸면, 저처럼 뒤를 따르는 ‘두번째 사람’이 생깁니다. 세번째, 네번째 사람이 나선다면 편견 없는 사회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요?
정리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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