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박노해씨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규탄하는 시들을 <한겨레>에 보내 왔다. <레바논의 민들레꽃>에 이어지는 박씨의 시들은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매일 한 편씩 새롭게 만날 수 있다.
박노해 시인 ‘레바논 연작시’를 보내며
많이 더우시죠? 박노해 시인입니다. 폭염과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들입니다. 레바논도 잠 못 이루는 공포의 밤들입니다. 집도 건물도 학교도 파괴되고, 피난민들은 물도 밥도 약도 없고, 빨래도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죽은 가족과 이웃들 장례도 못 치러 쌓아놓은 시체더미에선 썩는 냄새만 가득하고, 무너진 거리와 골목길에서 불발탄은 터져 오르는 지금 레바논은 참혹한 여름 지옥입니다.
레바논에 불안한 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유례없는 무차별 폭격과 어린이 대학살 앞에 인류의 분노와 항의시위가 모아져 이제야 UN의 휴전결의가 받아들여졌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레바논 시민들 1,200여 명이 학살당했고 그 중 3분의 1은 12세 미만의 아이들입니다. 이고 지고 떠난 피난민만 100만 명이 넘습니다. 20여 년간 애써 재건하고 복구한 한 나라의 삶의 터전과 사회 인프라는 순식간에 폐허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도 120명 가까운 군인과 시민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고 전함과 헬기와 탱크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어제 전화가 연결된 레바논 친구들은 절규했습니다. "이스라엘인의 목숨 하나가 레바논인 목숨 열 개의 무게냐"고. "하느님 앞에서 눈물방울의 무게는 서로 다를 수 있느냐"고.
레바논은 아직도 살얼음판의 공포입니다. 지금 이 시간, 곳곳에서 산발적인 총격과 폭탄 투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영토에서 아직 물러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미사일과 폭격기도 여전히 레바논을 겨누고 있습니다. UN 평화유지군이 들어가는데만 한 달여가 걸릴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난 이라크 전쟁터 현장에서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건 '전쟁의 후폭풍'입니다. 레바논 사람들의 실제적인 고통의 실감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학살당한 가족들의 不在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오고, 행방불명 된 혈육들을 찾아 미친 듯이 헤매다니고, 부상당한 친지들을 빈손으로 부둥켜안아야 합니다. 무너진 집터와 파괴된 직장과 폐허의 거리에서 일자리도 없고 당장 먹고 살 끼니조차 막막한 생존의 고통을 절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무관심의 공포입니다. '휴전' 소식 한마디에 레바논 뉴스가 사라지고, 인류의 눈길이 거두어지는 무관심의 공백 속에서 크고 작은 학살을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것이 전쟁의 후폭풍입니다. 사람들은 휴전 소식이 들리자마자 '이제 레바논은 된 거 아냐'하면서 마음 불편했던 부담감을 털어버리고 다들 자기 나라 문제와 자기 회사, 자기 가정과 개인 문제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관심과 참여는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날씨는 무덥고 장사는 안 되고, 나라문제건 주변문제건 잘 풀려가는 일 하나 없이 짜증스러운 때입니다만, 이럴 때일수록 더 어려운 레바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참담한 고통을 함께 느끼고 나누면서 삶의 건강함을 찾아야겠습니다. 인생살이가 언제 내 문제, 우리 문제 다 해결하고 나서 다른 사람과 다른 나라를 돌아보고 공동선을 생각하며 무너진 인간의 가치와 정의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이 여름 나눔문화는 광화문거리에서 <레바논에 평화를!> 거리 캠페인을 해왔습니다. 무더위 속에 바쁘게 오가던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정성어린 손길로 서명을 하고 지갑을 열어 만원 한 장, 천원 한 장을 모금함에 넣으시며 힘내라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신실한 희망의 뿌리를 새삼 확인하는 나날입니다.
길가던 초등학생 아이들도, 입시에 쫓기는 중고생들도, 젊은 대학생과 직장인과 휠체어 탄 장애인과 할머니 할아버지와 여러 나라 외국인들도 한마음으로 레바논 살리기에 동참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지금까지 <레바논 살리기> 서명에 함께하신 분들은 2,000여 명이 넘습니다.
우리 나눔문화 회원님들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모금과 격려를 보내주고 계십니다.
허브나라 이호순 원장님과 부산의 박훈희 회원님, 박상인 여인자 회원님과 노미수 회원님, 김경희 회원님, 전종훈 회원님, 강대근 회원님, 손유미 회원님을 비롯한 230여 회원님께서 짧은 시간 동안 1,700만 원이 넘는 모금을 해주셨습니다.
<레바논 살리기> 거리 캠페인에 나눔문화 회원님들도 바쁜 시간을 틈내 함께하고 계십니다. 최창모 교수님, 방혜신 선생님, 장미정 선생님, 장미성 선생님과 과천고 학생들, 나누는학교 김푸름군과 김경선양, 분당 영덕여고 심해린양 후배들, 김경숙님과 아들 이필립군, 윤혜진 선생님과 제자 세분... 많은 분들이 눈물 어린 마음으로 달려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레바논 주민들의 절망과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통곡의 레바논은 우리의 관심과 참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휴전'이라는 보도 한마디에 레바논이 뉴스에서 사라지고 우리 눈길마저 사라져버린다면 이스라엘과 미국의 폭격과 학살은 승인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미사일과 총구는 한반도와 시리아, 이란으로 겨누어집니다. 뉴스의 초점이 레바논에 집중되는 동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에 날마다 무자비한 폭격을 퍼부었고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갔습니다. 이라크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피투성이로 나뒹굴고 있습니다.
우리의 서명과 모금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폭격 앞에 무너져내린 인간의 양심과 정의를 살려내고, 힘든 일상 속에서 무디어가는 우리 안의 선함과 사랑과 영혼을 일깨워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곧 물러갈 무더위에 건강과 평화를 빕니다.
레바논 난민들에게 보낼 성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진 아체 주민들에게 희망을 나누고 머지않아 기적 같은 평화협정의 길로 접어든 것처럼 레바논에서 또 한 번 '나눔의 기적'을 일으켜 주십시오. 우리은행 1005-301-075535 (사)나눔문화(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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