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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여신과 대화를 나누는 보에티우스, 마티아 프레티, 17세기,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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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 4.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로마 최후 철학자가 쓴 ‘옥중 철학’
신의 섭리-자유의지 관계 규정해
“악한 것 적절히 쓰는 선의 결과
악한 것들도 선한 것이 되는 것”
신의 섭리·자유의지·‘인격’ 정의
400년 뒤 스콜라철학 토론 주제로
‘왜 악한 이들이 승승장구하고 선한 이들은 오히려 고통을 받는가?’
무능하고 부패한 ‘갑’들이 권력과 재력을 배경 삼아 승승장구할 때, ‘을’들의 입에서는 이런 탄식이 흘러 나온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이런 의문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사람은 억울하게 모함을 당해 감옥에 갇힌 이들일 것이다. 2016년 1월 타계한 고 신영복 교수도 이런 질문을 수백 번 던지지 않았을까. 그는 자신이 ‘대학’이라 부른 감옥에서 20년 20일 동안 복역하며 깊은 성찰이 담긴 편지를 남겼다. 그것을 모아 출간한 책이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이 책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기고 이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나도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성찰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런데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그 원조격인 고전이 함께 떠오른다. 로마 최후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보에티우스(Anicius Manlius Torquatus Severinus Boethius, 480??524/5?)의 <철학의 위안>(De consolatione philosophiae)이 그것이다.
보에티우스의 정치적 성공과 몰락
보에티우스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한 직후, 아니치우스라는 로마의 최고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학할 기회를 가졌고, 이를 통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모두 배울 수 있었다. 로마로 되돌아 온 보에티우스는 그리스어를 읽지 못하는 대중을 위해 두 철학자의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우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서적 2권과 그 주석서를 라틴어로 옮겼다. 그리고 7개의 ‘자유학예’(artes liberales) 중 산술학, 기하학, 음악학, 천문학을 4학과(quadrivium)로 종합한 후 이에 관한 개론서를 저술했다.
뛰어난 성장배경에 박식함과 훌륭한 인품까지 두루 갖춘 보에티우스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당시에 로마를 점령한 동고트족의 왕 테오데리쿠스(Theodericus, 454-526)도 이 소문을 듣고 그를 중용했다. 보에티우스는 ‘자유학예’에 관한 지식을 이용해서 동고트왕국 내의 화폐제도와 도량제도를 개혁했다. 그러자 테오데리쿠스는 그에게 더 중요한 과제들을 맡겼다. 보에티우스는 기술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서 재정 문제, 종교 간 충돌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임무를 완벽하게 해결했다. 그 결과 보에티우스는 직책이 점점 높아져, 40대 초반의 나이로 시종무장관(magister officiorum)이라는 가장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다.
보에티우스의 성공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그를 싫어하는 적대자의 수도 늘어났다. 동고트 왕국의 부패한 귀족들은 강직한 보에티우스를 몇 차례나 회유하려다 실패하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를 제거하기로 결론 내렸다. 청렴한 보에티우스에 대한 몇 차례의 모함이 실패로 돌아간 끝에, 적대자들은 마침내 그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냈다.
당시 양분된 로마 제국 중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콘스탄티노플에 위치한 동로마 제국은 건재했다. 테오데리쿠스는 자신의 로마인 관료들이 같은 핏줄에 속하는 동로마 제국과 내통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로원 의원 알비누스가 동로마 제국과 내통하여 반역을 꾀한 혐의로 고소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이 모함이라는 사실을 안 보에티우스는 뛰어난 웅변술로 자신의 동료 알비누스를 변호했다. 그러자 적대자들은 이 변론을 이용하여 보에티우스를 반역의 주동자로 몰았다. 반란을 두려워하던 테오데리쿠스는 결국 보에티우스에게서 등을 돌렸다. 보에티우스는 최소한의 변론 권리도 박탈당한 채, 하루아침에 사형수가 되어 파비아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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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에티우스,유스투스 판 겐트, 우르비노, 마르케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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