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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크니의 돌스턴정크션 지하철역 입구의 맞은편 벽에 붙은 팻말. 흰 글씨로 ‘난민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해크니는 전체 인구의 25%가 이민자이며, 쓰이는 언어만 103개에 이르는 ‘멜팅 포트’(다인종·문화 융합지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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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행복한 세상] 창간 28돌 기획
착한 성장 행복한 사람들
② 따뜻한 공동체 런던 해크니
인구 4명 중 1명이 이민자 출신
협동조합 지원 소규모 기업 번성
지역경제를 이끄는 구조 만들어
런던 해크니구 중심가에 위치한 돌스턴정크션 지하철 역. 역 입구를 나서면 길 건너편에 걸린 큰 팻말이 눈길을 잡는다. 초록색 바탕의 팻말에는 “난민을 환영합니다. 돌스턴은 전세계 가족들과 연대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낯선 이국땅에 첫발을 내디딘 많은 이민자들이 이 문구를 보면서 해크니로 들어섰을 것이다. 아프리카·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인종·민족이 뒤섞인 런던 안에서도 해크니는 이민자와 유색인종 비율이 특히 높다. 해크니 주민 4명 가운데 1명이 이민자 출신(6만5000명)이며, 주민들이 쓰는 언어만 103개에 이른다. 해크니의 문화적 성격은 ‘멜팅 포트’(melting pot·용광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융합한 곳)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지역정부와 지역사회는 이민자 출신들을 어떻게 지역사회와 지역경제로 연결시킬 것이냐를 고민하게 된다.
지난 3일, 이 팻말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키프로스 출신 이민자 커뮤니티인 ‘해크니 키프로스 협회’를 찾았다. 1972년에 문을 연 이곳은 해크니의 다양한 이민자 협회 중에서도 역사가 깊은 편이다. 점심시간을 맞아 30여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한 10여개의 테이블이 사람들로 가득 찼고, 테이블에는 샐러드를 곁들인 양고기와 터키식 커피가 차려졌다. 협회에서 제공하는 점심은 한 끼에 10파운드로 일반인에게도 판매하지만, 협회 회원들에게는 4파운드만 받는다. 주로 노인층인 키프로스 출신 회원들에게 저렴하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해크니 구청은 매년 이 협회에 6천파운드(약 1천만원)의 보조금을 주지만, 구청 몫이기도 한 서민층 사회복지 역할 일부를 이 협회가 맡아주는 셈이기도 하다.
협동조합, 도시재생 주도…런던 예술가·상인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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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도시로 탈바꿈시켜
“이젠 부의 재분배가 주요 과제” 다양한 이민자 협회 저렴한 점심에 무료 법 상담까지
이민자들 안착 등 사회복지 역할
“정부 지원비용은 투자로 봐야죠” 키프로스 외에도 해크니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각각 출신지별 이민자 단체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이런 이민자 협회는 이민자들이 많은 해크니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이민자 협회·커뮤니티들이 해크니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습니다. 해크니를 이민자 친화적인 도시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죠.” 칼 웰럼 해크니구청 도시재생팀 팀장은 이들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해크니의 정신을 만들어왔다고 강조했다. 40년 전만 해도 빈곤한 이민자들이 모여들던 해크니는 런던의 가장 대표적인 빈민가였다. 실업률과 범죄 발생률도 매우 높았다. 그런 해크니가 지금처럼 활기차고 따뜻한 공동체 사회로 변신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역의 도시재생을 앞장서 이끌어온 ‘해크니개발협동조합’(HCD)의 역할이 컸다. 해크니개발협동조합은 1982년 해크니에 기반을 둔 주택협동조합에서 시작된 ‘지역공동체이익회사’다. 조합은 소유 건물을 작업 공간으로 저렴하게 임대하고, 단체 운영과 경영 전략에 대해 전문상담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해크니에 있는 비영리 조직과 소규모 사업체들을 돕는다. 도미닉 엘리슨(37) 해크니개발협동조합 대표는 도시 재생의 핵심 과제로 지역의 소규모 기업에 대한 지원을 꼽았다. “해크니에 있는 기업 중 78%는 고용 인원이 5명 이하인 소규모 회사이고, 해크니 전체 인구 중 18%가 자영업자입니다. 소상공인들이 전체 지역경제를 이끌어가는 구조인 거죠.” 현재 조합의 작업 공간에 입주한 기업은 80여곳, 조합원은 300여명에 이른다. 해크니개발협동조합은 1982년 돌스턴 지역에 버려져 있던 건물을 구청으로부터 임대받으면서 첫발을 뗐다. “해크니에는 2차대전 이후 폭격을 맞아 부서진 건물이 많았는데, 구청은 건물을 수리할 자금이 없어 30년 넘게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고, 이런 공간은 우범지대가 되어 다시 범죄율을 높이는 악순환이 계속됐습니다. 조합은 구청에 ‘앞으로 100년간 ‘후추알 임대’를 해주면, 우리가 건물을 보수해서 운영하겠다’는 사업 계획서를 냈고, 구청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사업이 시작된 거죠.” ‘후추알 임대’란 중세 영주가 농민에게 후추 한 알을 받고 땅을 빌려준 것에서 비롯된 용어다. 농민은 임대료 없이 농사를 짓고, 영주는 자신의 땅이 개간돼 자산가치가 높아지는 등 양쪽 모두에 이득이 되는 것을 일컫는다. 돌스턴 지역에 있는 3층짜리 구청 소유 건물을 얻은 조합은 이어 공익적 목적을 가진 사업에 대출을 해주는 영국의 트리오도스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아 이 건물을 리모델링해 ‘돌스턴 워크 스페이스’라는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을 지역의 기업과 상인들에게 싼값에 임대하면서 조합의 활동과 해크니의 재건이 동시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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