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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일몰.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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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노동효의 중남미 아미스타드
뱃길·하늘길 도합 4천㎞ 횡단해 대선 투표···퇴임때 지지율 높은 대통령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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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일몰.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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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을 건너는 여객선.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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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플랜> 보고 투표 결심
아마존 건너 열흘만에 한표 행사
투표지엔 인류역사가 담겼으므로 애초에 아마존을 횡단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어. 브라질 북쪽 해변마을에서 김어준이 유튜브에 올려놓은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았더라면. <더 플랜> 감상 후 내게 남은 건 지난 대선 개표조작 의혹이 아니었어. 내 심장에 내려앉은 두 여성의 눈물. 한 명의 미국인과 한 명의 한국인. 두 여성은 가상의 개표조작 상황을 목격한 직후 눈물을 왈칵 쏟았어. 가족이나 친구가 죽은 것도 아닌데 왜? 투표용지는 한낱 종이 쪼가리가 아니었던 거야. 한 방울의 포도주 속에 태양, 바람, 나비의 날갯짓이 들어 있는 것처럼. 한 톨의 쌀알 속에 농부의 땀, 흙냄새, 여름의 장마, 가을의 일몰이 들어 있는 것처럼. 한 장의 투표용지 속에 부당한 권력과 불평등에 맞서 싸워온 인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던 거야.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다 목숨을 잃은 이한열, 흑인 참정권을 위해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피 흘리며 행진한 미국인들. 여성 참정권을 외치기 위해 달리는 말 앞으로 뛰어든 영국 여성 에밀리와 동료들. <더 플랜>에서 마주친 두 여성의 눈물이 재외투표소로 가길 망설이고 있던 나를 이끌었어. 마나우스행 비행기를 타고 간 뒤 아마존 뱃길을 지나 페루 이키토스로 가자, 그리고 다시 페루 국내항공을 이용해 리마 소재 대한민국 대사관까지 가자! 마나우스 상공에서 내려다본 아마존은 초록빛 열대우림 사이로 황토색 뱀이 구불구불 뒤치며 기어가는 듯한 모습이었어. 마치 가느다란 동아줄을 풀밭에 던져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 그래서일까? 아마존 강폭은 한강보다 훨씬 좁을 줄 알았어. 선착장에서 보니 아마존은 거대한 유람선이 수없이 오고 가도 텅 빌 정도로 넓었어. 마나우스에선 강폭이 16㎞나 된다고. 여객선에 올랐어. 물살을 헤치며 배가 누런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어. 해 질 무렵이 되자 강의 색이 변하더군, 바다처럼. 맑은 날, 해 질 무렵 바다는 거울처럼 변해. 파란 하늘이 수면 위에 내려앉으면 푸른 액체금속처럼 번들거리지. 색깔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그 푸른빛을 무척 사랑했어. 근데 그 빛을 아마존에서 보게 될 줄이야. 하늘도 강도 파랗게 변했어. 가운데 초록띠 같은 밀림이 길게 이어질 뿐. 그러다가 부욱, 성냥을 긋듯 번지는 일몰. 밤의 아마존은 사막 같아. 앞으로 나아가는 배의 엔진 소리뿐. 뱃머리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은하수가 지나가고 있었어. 먹물을 퍼부은 듯 새까만 강 위로 반짝이는 저 빛은 뭐지? 그건 별빛이었어. 어둡고 잔잔한 수면 위에 별들이 내려와 고스란히 떠 있었어. 순간, 아래가 텅 비며 우주를, 허공을 항해하는 듯한 착각에 휩싸였어.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면 이런 느낌일까? 명왕성으로 가는 길이 몇 개월, 몇 년이 걸리더라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어. 선박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고 뱃머리에 앉았는데 선박에서 일하는 친구가 곁에 와 앉더니 어디 나라에서 왔냐며 말을 걸었어. “리마엔 무슨 일로 가니?”, “한국 대통령 뽑는 투표 하러 가는 길이야.”, “여행자에게도 대통령 뽑는 선거가 중요하니?”, “응.”, “왜?” 한국에서 지낼 때 시청 앞이나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곤 했어. 그럴 때면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지.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을까, 한국 밖에서 평생을 지낼 수도 있는데 왜 이곳에서 촛불을 들고 있을까?’ 질문 끝에 다다른 결론을 친구에게 들려주었어. “이 세계 어디에 있든 난 모국어로 생각하기 때문이야.” 어떤 날 저녁엔 세찬 비가 내리기도 했어. 그런 날엔 아마존 숲 너머로부터 먹구름이 몰려왔지. 한 방향이 아니라 360도를 돌아가며 번개가 연달아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피뢰침이라도 된 것 같았어. 어떤 날은 아마존 돌고래를 만나기도 하고, 어떤 날엔 배 안에 가득 들어와 있는 수천마리 메뚜기 떼를 목격하기도 했어. 또 어떤 날은 갑판을 돌아다니며 뒤집어진 채 버둥거리는 풍뎅이를 한 마리, 한 마리 바로 앉혀 주며 시간을 보내곤 했지, 지구를 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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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먹구름.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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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페루 한국대사관 재외투표소. 노동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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