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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02 19:43 수정 : 2016.11.04 19:01

나라가 부끄럽고 어지러운데 대학은 중간고사를 치렀다.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탓인지 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과잠’이 불현듯 낯설게 느껴졌다. 대학과 학과 이름을 등에 새긴 점퍼인 과잠은 옷까지 신경 쓸 겨를 없는 시험 기간이라 편해서 선택한 겉옷인가 싶다가도, 학기 내내 과잠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으니 대학 교복인 듯싶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는 리폼한 교복이나 사복을 욕망하던 그들이 어째서 대학에 와서는 스스로 획일적인 과잠을 선택했을까? 패션에 특히 민감한 20대 초반의 청춘들이 왜 개성 없는 옷을 입으려 할까?

과잠은 개성을 앗아가나, 소속감을 부여한다. 소속감은 비싸다. 이 문장은 모순이다. 소속감은 가격을 매겨 파는 물건이 아니니, 비쌀 수 없다. 그것은 사랑이나 믿음처럼 정서적 가치다. 모순된 문장이 가리키는 내용은 진실을 향한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소속감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어딘가에 안정적으로 속해 있다고 느껴야만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면 가족에 속하고, 초?중?고교를 다니면서 또래집단과 학교에 속하면서 소속감을 얻는다. 이때까지 소속감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고, 때로는 과도해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속박이다.

저절로 주어진다고 여긴 것들의 소중함은 그것을 박탈당할 때 여실히 체감된다. 대체로 삶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깨달으면서 인간은 성장하는데, 그런 면에서 대학은 성인의 시작점이다. 동일 지역을 기반으로 배정된 학교를 다니다가 성적만 비슷할 뿐 많은 것들이 다른 이들로 구성된 대학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사회다. 이곳에서의 소속감은 전적으로 스스로 성취해야 하는데, 이때 대학이 가족과 이전 학교들처럼 안정적이고 긴밀하게 나와 연결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은 잠재적 취업 경쟁 상대들이 모인 일시적인 집합소일 뿐이다. 나와 네가 모였으나 학점과 스펙 관리 등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우리로 묶어내지 못한다. 나의 복수형이자 확장형으로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지 못하니, 개체로 고립된 나와 너는 소속의 결핍감에 내몰렸다. 괄호 밖에 찍힌 점과 같은 처지다.

이때, 대학과 학과의 이름이 드리우는 그늘 아래에서 나와 너는 우리가 되어 소속감을 갖는다. 과잠은 그 소속감을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오브제다. 이것이 비록 경쟁의 전선을 흐릿하게 만드는 착시일지라도, 잠시나마 집 밖에서 소속감을 갖게 되니 기분 좋은 속임수다. 그래서 과잠이 소위 명문대생들이 자부심을 드러내는 수단이라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다.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에 따르면, 사람은 공동체 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환대 안에서만 사람으로서 제자리를 획득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 안에 자기 자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때 타인의 환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환대를 통해 나와 네가 소속된 공동체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안정적인 상태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된다. 환대의 권리가 없으면 사람은 물건처럼 소모될 뿐이다. 따라서 소속감은 공동체 안에 내 자리가 명확히 있으며, 그 자리를 공격받거나 빼앗길까 전전긍긍하지 않을 때 안정적이다. 나를 중심으로 나와 다른 이들과 연결과 확장으로 만들어낸 공동체라야 소속감이 탄탄하고 영속적이다.

그러나 과잠이 부여하는 소속감은 껍질의 공동체에 근거하기에 위태롭다. 다른 대학, 다른 학과와의 분류와 분리에 근거하여 얻어졌기 때문에 더 세밀한 분류와 분리 앞에서 힘을 잃고 무너진다. 최근에 어떤 대학의 과잠에는 출신 고등학교 이름(외고, 특목고 등)까지 적어 넣고 있다. 과잠이 부여하던 소속감은 순식간에 더 작은 분류 앞에서 힘을 잃는다. 공부만 잘하는 애들의 미성숙과 더불어 한국 교육제도의 문제라고 치부하겠지만, 그들은 진지하고 절박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소속감을 갖고 싶을 뿐이다.

이동섭/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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