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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01 19:45 수정 : 2017.02.01 20:04

[ESC] 이동섭의 패션인문학

강동원, 김태희, 원빈, 송혜교, 이병헌, 전지현, 정우성의 공통점은? 모두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배우로서 안경을 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유명배우들의 얼굴도 떠올려보라. 스크린 밖 공식 장소에서는 아마도 대부분 안경을 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외모가 우월하면 시력이 좋다’는 의학계의 연구 결과가 없다는 사실로 미뤄보건대, 이것은 이유가 분명한 전략적 선택이다. 그들의 얼굴엔 대중을 매혹시킬 수 있는 신화적인 힘이 있으므로, 안경 같은 방해 요소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 배역이 안경을 껴야 할 때, 디자인 선택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속적으로 그 모습이 대중적으로 노출되는 드라마의 경우, 자칫하면 안경은 그들의 얼굴 자체가 내포한 고유한 이미지를 변질시킬 위험이 크다.

영화배우도, 얼굴이 명함도 아닌 평범한 한국 남자들은 유독 안경을 많이 끼는 편이다. 특히 뿔테안경은 ‘교회오빠룩’과 댄디룩을 완성시키는 필수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진다. 내 주위에도 시력이 좋은데 굳이 값비싼 안경을 유행에 따라 바꿔가며 쓰는 남자들이 꽤 있다. 시력 보정 기능은 없지만, 지적인 분위기 연출 기능은 확실히 있다. 거기에 검정 터틀넥까지 입으면 하루에 책 한 권씩은 읽어치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이렇듯 뿔테안경에 대한 믿음과 로망이 강해서 ‘웃픈’ 모습도 생겨났다. 바로 렌즈 없이 테만 덩그러니 끼는 경우다. 이것은 지적인 이미지를 탐하는 이미지만 풍길 뿐이다. 이때 안경은 일종의 가면이다. 가면의 본질은 감추면서 드러낸다는 것이다. 풀어 말하자면, 자신의 지적이지 않은 원래 얼굴은 안경으로 슬쩍 가리면서 동시에 지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야구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오늘 머리를 감지 않았구나’라고 지레짐작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다’던 괴테의 말은 틀림이 없다. 안경으로 얻은 이미지는 안경을 벗으면 사라지기 마련이니, ‘지적인 분위기를 갖고 싶으면 지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롤랑 바르트의 가르침을 참고로 알려드린다.

개그맨에게 안경은 일종의 간편한 착탈식 외모변장술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무한도전>의 레전드급 에피소드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유재석과 김제동이 안경을 벗은 순간 못생김은 봇물이 터졌고, 시청자들의 웃음도 더불어 폭발했다. 안경 하나로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사실은 개그맨으로선 축복이나, 자연인으로선 슬플 것이다. 안경이 외모의 잘생김을 가릴 수 있으나 없앨 수는 없듯이, 못생김을 가릴지언정 감출 수는 없으니 그들에게도 안경은 일종의 가면이다.

안경은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유느님’(유재석), ‘연느님’(김연아), ‘치느님’(치킨)에 이어 지난해 대한민국 4대 느님으로 새롭게 등극하신 ‘손느님’ 손석희의 경우다. 만원도 하지 않는 전자시계가 그의 소박함을 드러낸다면, 타원형 금속테 안경은 정갈하게 빗은 머리스타일과 결부되면서 냉정한 지식인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그가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면 모든 것이 다 사실과 뉴스로 느껴지는 이유다.

(안경을 잘못 선택해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조영남은 그림 대작 사건으로 검찰에 출석할 당시 선글라스를 껴서 비판받았다. 잘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가 얼굴과 속내를 조금이라도 감추려고 그랬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도 이미지 개선을 위해 안경을 선택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날카로운 눈매와 부정적인 인상은 뿔테안경 덕분에 완화됐다. 이걸 두고 여론조사까지 했다고도 하니 나름 꽤 심각한 문제였던 모양이다. ‘벚꽃 대선’이 예상되는 가운데 각종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티타늄 소재의 타원형 무광 검은색 안경테로 예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이미지를 얻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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