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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9 20:12 수정 : 2017.03.29 20:21

군복을 입고 미국 국기를 든 시민이 서울 광화문광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SC] 이동섭의 패션인문학

군복을 입고 미국 국기를 든 시민이 서울 광화문광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문장이 현실이 되기까지 1차 촛불집회로부터는 5개월, 세월호 참사로부터는 3년 정도가 필요했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읽은 주문은 한국 현대사의 아주 결정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하나 된 촛불시민들은 최순실 국정농단을 일종의 정파적 사건으로 축소시키려는 집권세력에 맞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어냈다. 추운 겨울 광장에서 우리는 서로를 다독이며 정의가 승리하는 고귀한 경험을 함께했다.

촛불집회에 맞서서 생겨난(혹은 조직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집회는 광장의 반대편에서 탄핵 기각과 탄핵 무효를 외쳤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하나의 의견으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초기에 돈 받고 집회에 동원됐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어느 시점부터는 분명히 자발적 참가자들이 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군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태극기를 흔드는 집회 풍경은, 마치 리퍼트 전 미국 대사 습격사건 때 쾌유를 빈다며 개신교 교단 소속 교인들이 북춤과 부채춤을 출 때 입은 한복과 성조기의 조합처럼, 참 익숙한데 몹시 어색했다. 많은 말들이 떠오르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전혀 맥락에 맞지 않아 키치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담긴 속뜻을 감히 풀어보자면 리퍼트 사태 당시 한복과 부채춤이 한국의 일부 개신교 집단의 전근대성을 상징한다. 탄기국 집회 참가자들이 애용하는 군복은 선망과 소속감의 강렬한 기호다. 이유인즉슨 이러하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고위관료와 유력 정치인의 군 면제자 비율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비해 높다. 군 면제는 더더욱 힘 있는 특권세력의 표지처럼 비치게 됐다. 아스팔트 우파(탄기국, 어버이연합 등)는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군복을 입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지지하는 우파 정부에서 크게 출세한 자들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애국과 충성을 내세우는 그들이 이런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모순된다. 이것은 개인과 집단의 심리 작동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집단 심리는 충동, 습관, 감정이 주도하며, 결정의 근거는 주로 믿음직스러운 지도자의 선례다.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집단의 생각이나 경험을 상징하는 상투어나 이미지가 판단기준이 된다. 지도자 박근혜를 잃은 아스팔트 우파에 군복과 태극기가 그러하다. 한국 우파는 해방 이후 줄곧 힘 있는 쪽에 서 있었다. ‘군복=군대=국가=우파’의 동일시가 이뤄지니 아스팔트 우파에 군복은 국가와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이미지고, 그들은 그에 깃든 강한 힘과 권력을 선망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많은 생각과 행동들이, 사실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욕망을 보상하는 성격을 띤다. 우리가 고급 아파트에 살려고 애쓰는 이유는 주거 공간의 필요성이 아니라, 그것이 재산의 상징이자 사회적 계급 척도이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탄기국 집회에서 많은 노년층이 군복을 선택한 것은 입을 옷이 없어서가 아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복처럼 젊은 시절 그들에게 가장 성공한 자들의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설령 현재의 나는 출세하지 못했더라도 군복을 입음으로써 출세한 그들과 같은 조직에 속한다는 기분이 든다. 현대사회에서 소속감은 얻기 어렵다. 노년 남성들은 일상에서 결여된 소속감을, 군복을 입고 집회 현장에서 보상받는다. 그들에게 박근혜는 지배자, 친박 정치인들은 연락책, 아스팔트 우파는 사병으로 상징적인 군대 체계가 완성된다.

민간인이 군복을 착용하는 행위는 불법(예비군 훈련 기간 제외)이다. 하지만 그 법률에 따라 탄기국 집회 참가자가 처벌받았다는 뉴스를 본 적 없다. 극우파의 불법에 관대한 한국 사회의 단면이다. 자신들의 정치집회에 군복을 입은 시민들을 동원(방치)하는 것은, 국가를 지키는 중요한 조직인 군대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다. 애국의 기본은 준법이다. 아스팔트 우파의 군복에는 이런 모순이 담겨 있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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