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27 20:43
수정 : 2016.06.03 16:22
[매거진 esc] 데렉의 술, 그리고 사람
블로그 이웃으로 추가한 분들 중 충남 태안에서 카페를 하시는 분이 있다. 카페 주인장이지만 오디오 쪽으로 더 유명하신 분인데 어느 날 블로그 글을 읽던 중 가수 이광조씨의 새 엘피(LP) 앨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10대 초반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란 노래를 처음 접하고 ‘하, 노래 정말 좋네’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아마도 앨범 제목이 <아임 올드 패션드>(I’m Old Fashioned)가 아니었다면 새 앨범에 대한 호기심이 구매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을 것 같다.
1942년에 <유 워 네버 러블리>(You Were Never Lovelier)라는 영화의 영화음악으로 처음 제작되었던 이 노래는 그 후 엘라 피츠제럴드, 존 콜트레인, 쳇 베이커 등 수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에 의해 연주되고 불렸다. 노래도 노래지만 가사가 특히 좋은데 가사가 이렇다.
‘나는 구식입니다/ 난 달빛을 사랑해요/ 난 오래된 것들을 사랑합니다/ 창틀에 떨어지는 빗소리/ 4월이 노래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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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패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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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생각해보면 나도 구식이다. 원래도 구식이었고 어느새 구식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나이도 되었다. 옛 음악이 좋고, 옛 미술이 좋고, 예전 골목길이 정겹다. 정신없이 바뀌어가는 사회에 덩달아 휩쓸려가며 어느 순간 바람에 날려가고 어느 순간 마음속으로 가라앉는 생활을 반복해가며, 지나간 것들을 그리워한다. 그렇게 바에서 ‘올드패션드’ 한 잔을 시킨다.
올드패션드라는 칵테일은 이름도 이름이지만 칵테일간의 연배를 따져도 가장 나이가 든 축이다. 1881년 루이빌의 펜데니스 클럽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들 하는데 그보다는 그 시대에 흔히들 마셨던 기본 재료에 약간의 양념만 첨가하는 초창기 칵테일 중 하나로서 기원을 알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어쨌거나 늦어도 1900년대 초반부터 많이들 즐겼던 칵테일임은 확실하고 얼핏 봐도 100살이 넘은 칵테일이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버번(옥수수를 원료로 한 위스키)도 좋고 라이(호밀로 만든 위스키)도 좋다. 어떤 위스키든 미국에서 생산된 위스키에 앙고스투라 비터스라는 향료를 조금 섞고 얼음을 넣어 마시면 된다. 물론 전문 바에서는 이런저런 변화를 줘서 서브하는 경우가 많지만 기본 재료가 간단해서 오히려 좋은 재료와 바텐더의 테크닉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칵테일이다. 라이 위스키의 약간 뭔가 불량식품 같은, 그래서 더 매력적인 맛에 앙고스투라 비터스라는 초창기에는 복통약으로도 쓰였던 약초가 들어간 독한 술 몇 방울, 이 두 술이 결합되면서 원래 없던 향도, 품격도, 올드패션드라는 이름에 걸맞은 클래식한 느낌도 같이 생긴다.
생각해보면 ‘구식’이라는 말이 무조건 나쁜 말일 리 없다. 보수라는 정치이념이 원래는 진보와 더불어 인류를 관통하는 사상이었고(새는 두 날개로 난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클래식’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중후한 품격을 갖고 있다. 언필칭 말하는 ‘꼰대’만 아니면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면 2016년에 처음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은 칵테일을 마셔도 좋을 것이다.
서울 연남동에 ‘바 올드패션드’가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학구파 바텐더가 만들어진 지 100년은 족히 넘은 수십 종의 클래식 크래프트 칵테일들을 술꾼 입맛에 맞게 서브해준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칵테일들을 맛보고 싶다면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같은 술꾼인 이한별 오너바텐더가 맛있는 술뿐만 아니라 술에 대한 이야기보따리까지 한아름 안겨줄 거라고 확신한다.
아저씨 애주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딱 20년 된 아저씨 애주가입니다. 미친 듯이 동굴을 찾다 ‘바’라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술과 사람 이야기를 오랜 친구와 조용한 바에서 이야기하듯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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