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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13 21:19 수정 : 2016.07.13 21:26

데렉의 술, 그리고 사람

데렉 제공
사회생활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난 다음 인간관계 속에서 계속 나 자신을 설득한 것들 중 하나가 사람은 ‘원래’ 화장실 갈 때와 다녀온 뒤가 다르다는 거였다. 개인적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으려 많이 노력하는 편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캐릭터가 딱히 도덕적이라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남에게 싫은 소리, 소위 비난을 듣는 것이 끔찍할 정도로 싫어서 그런 것 같다.

별로 도덕적이지도 못한 주제에 비도덕적이란 소린 듣긴 싫어서 그런 소리 안 들으려 노력하며 살지만, 손해 보며 사는 건 죽어도 싫으니 결국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다른 사람을 끔찍하게 싫어하게 된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손해 보는 것 그 자체보다 손해 보는 내 모습이 한심스럽게 생각되고, 그게 나 자신에게 상처로 다가오니 나를 설득하게 된다는 건데 그런 내가 조금 싫어질 땐 평소엔 그다지 마시지 않는 브롱크스(Bronx·사진)란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곤 한다.

브롱크스는 다음과 같이 만든다. 드라이진(노간주나무 열매를 알코올에 침전시켜 만든 증류주)에 스위트 베르무트(레드 와인에 브랜디나 당분, 향료나 약초를 넣어 만든 술), 드라이 베르무트(화이트 와인에 브랜디나 향료, 약초를 넣어 만든 술)가 들어가고 거기에 오렌지주스를 추가해 흔들어 준다. 마티니(드라이진에 드라이 베르무트를 넣고 저어서 만드는 칵테일)같이 민감한 칵테일에 비하면 비교적(어디까지나 비교적이다!) 대충 만들어도 마시기 좋은 한 잔이 나오고 그래서 머리가 복잡할 때 만들어 마시기 편하다. 대부분의 칵테일들은 신선한 과일에서 방금 착즙한 주스를 써서 만드는 것이 맛있지만 이 칵테일은 블러디 메리(토마토주스에 보드카 등을 섞어 만드는 칵테일)처럼 공장제 주스를 쓰는 게 더 낫다. 개인적으론 일반적인 레시피에서 진은 좀 줄이고 주스는 좀 많이 넣어 마시는 걸 선호한다.

브롱크스가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1908년에 발행된 윌리엄 부스비(Boothby)의 <세계의 음료와 섞는 법>(The World’s Drinks and How To Mix Them)이란 책에 이 칵테일이 실려 있었으니 최소한 1908년보다 이전에 만들어진, 꽤나 오래된 클래식 칵테일인 셈이다. 다른 칵테일이 그렇듯, 이 칵테일 역시 미국 금주법 시대(1919~1933)에 보편화되어 보급되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형태의 창작에 역설적으로 제약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꽤 있다. 문학 쪽에서는 우리나라 시조나 일본 하이쿠(정형시의 일종)의 글자 제한이나 계절어(계절을 나타내는 단어)가 그랬고, 주류문화, 특히 칵테일이나 바 문화에서는 금주법 시대가 오히려 관련 문화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이른바 스피크이지(간판을 달지 않고 입구를 찾기 어렵게 만들어놓아 아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게 한 영업 형태) 스타일의 바는 금주법 시대에 처음 시작되었다. 그 시절 그 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술을 단속해야 할 경찰과 술을 몰래 만들던 밀주범이 같이 술을 마셨다는 재미나다면 재미난 에피소드도 꽤나 여러 곳에서 전해진다.

술꾼이라는 인종 자체가 즐거워도 술, 괴로워도 술을 찾는다고는 하지만 이젠 조금 어렵고 힘들다고 남들 신경 안 쓰고 부어라 마셔라 할 나이는 지났다. 뭣보다 몸이 버텨내지 못한다. 영화배우 김고은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옥상같이 높은 곳에 올라가곤 한다던데 그런 식으로 뭔가 ‘이럴 때는 이것’이라는 것을 정해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죽을 만큼 어렵고 힘들 때는 다시 설 수 있을 때까지 정해진 틀 안에 나를 가둬 넣고 그 틀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면 그나마 머리라도 가벼워지니까. 그래서 난 오늘도 브롱크스를 만들고, 그렇게 술꾼은 또 한잔 마실 핑곗거리를 찾는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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