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9.21 19:56 수정 : 2016.09.22 11:48

[매거진 esc] 데렉의 술, 그리고 사람

버번 위스키 ‘부커스’. 데렉 제공
고독한 미식가라는 일본 드라마를 매우 좋아한다. 주인공 아저씨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긴 하지만 술을 안 마신다는 걸 제외하면 식성도 성격도 나와 꽤나 비슷한 편이라 동질감도 많이 느끼곤 한다. 같은 중년이라 그런가 보다. 최근엔 사무실에만 있다 보니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부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사무실에선 드라마를 볼 수가 없으니 일본에서 사온 드라마 사운드트랙 시디(CD)에서 음원을 추출해 점심시간에 가끔 듣곤 한다. 꽤나 행복해진다.

드라마가 시작될 때 항상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이 나온다.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이기적이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 고독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활동이다.” 이 말에 100% 공감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을 때, 어떤 신경도 쓰지 않고 먹는다는 것만으로 사람은 치유받을 수 있다. 혼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맛있는 술을 마시면서, 배배 꼬인 실타래처럼 복잡한 머릿속 신경다발을 차근차근 풀어내는 느낌, 그날 하루를 정리하는 의식으로서 이 이상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만 이런 건 아닌 것 같다. 최근 혼밥, 혼술이라는 단어가 꽤 여러 곳에서 들린다.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니 느끼는 것도 비슷한 모양이다. 어떤 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문장이 아직도 기억난다.

“혼자 술을 마시면 친한 동료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사소한 일들, 억울했던 일과 짜증났던 일이 남의 일처럼 차분해진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그렇게 나를 정리하기 위해 위스키 뚜껑을 열곤 한다. 보통 이런 기분일 땐 버번(Bourbon, 미국에서 옥수수나 호밀을 발효시킨 후 증류·숙성해서 만드는 위스키로 스카치 위스키와 달리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을 마시곤 한다. 특히 머릿속 상념들을 정리하고 싶어질 때면 부커스(Booker’s)에 얼음을 넣어 마시곤 한다.

부커스 버번은 유명한 짐빔사의 5대 사장이자 증류 책임자인 부커 노가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선물하려고 자사가 보유한 버번 원액 중 특히 좋은 것을 골라 병입해 유명해진 버번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는 숙성된 버번 위스키 중 좋은 것을 통에서 꺼낸 뒤 물을 타거나 여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병에 넣었다. 이것이 소문이 나면서 미국 전역에서 판매 요청이 답지하자 외부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부커스에 담기는 원주는 모두 짐빔사의 숙성창고 가장 중앙에 보관한다.

참고로 증류된 위스키 원액의 도수는 60~70도 정도인데 이 원액을 오크통에 넣어 수년간 숙성한 후 보통은 물을 타서 40~43도로 조정해 판매된다. 그러나 물을 타지 않은 형태로 팔리는 위스키들도 있는데 이런 위스키들을 특히 ‘캐스크(오크통) 스트렝스’라고 부른다. 부커스 역시 대표적인 캐스크 스트렝스 위스키이며 대개 63~65도 정도로 출하된다.

개인적으로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는 대개 스트레이트로 마시곤 하지만 버번의 경우는 얼음을 넣어서 온더록스로 마셔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얼음을 넣으면 맛이 풀어지기 때문에 40도 남짓의 도수인 버번보다는 부커스처럼 독한 버번이 더 매력 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난 뒤 맛보는 독한 버번이 사람을 쉬게 한다.

집이다 보니 속옷 바람으로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천장을 보며 술을 마시다가 문득 꺼진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내 모습을 보고 장국영을 연상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매우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영화 <아비정전>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도 어느새 장국영이 세상을 떠난 나이와 비슷해졌다. 누구나 안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그도 참 힘든 일이 많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고민을 짐작조차 할 순 없겠지만 뜬금없이 그도 혼자서 술을 마시며 머릿속을 정리하곤 했을지 모른다. 그를 생각하며 잔을 든다. 그곳에서는 부디 행복하기를.

데렉 아저씨 애주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데렉의 술, 그리고 사람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