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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6 19:23 수정 : 2016.11.17 08:49

[ESC] 데렉의 술, 그리고 사람

불릿 라이 위스키, 앙고스투라 비터스, 친차노 로소 스위트 버무스(왼쪽부터)로 만든 칵테일 ‘맨해튼’. 데렉 제공

11살 난 아들을 키우고 있다. 나에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같은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가끔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가끔 나에게 “놀아줘, 심심해”란 말을 하곤 하는데 “그래, 그럼 뭐 하고 놀까?” 하면 정작 “몰라, 그냥 심심해. 놀아줘”라는 대답을 할 때가 많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이걸 어째야 하나 싶은데 그렇다고 아들에게 그 당황스러움을 표현하기도 좀 그렇다. 본인도 오죽 답답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뭔가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은데 정작 뭘 먹으면 좋을지는 모르겠고, 신나게 놀고 싶은데 정작 뭘 하면 신날지도 잘 모르겠고, 어딘가 가서 조용히 술 한잔하고 싶은데 정작 어디 가서 무슨 술을 어떤 안주와 마셔야 할지도 잘 모르겠을 때, 나도 아들처럼 꼭 그렇게 답답하다. 어른도 그럴 때가 많은데 11살짜리 초등학생이야 오죽하랴, 그냥 꼭 껴안아주면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하고 물어보는 수밖에.

11살 때 나는 어땠었나를 생각해봤다. 맞다, 그 나이에 처음 술을 마셔봤다. 시골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어머니들은 막걸리에 설탕을 넣어 데워 마셨는데 그 옆에서 어머니가 드시던 막걸리를 한 모금 얻어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땐 ‘아유 이런 걸 왜 마셔’가 솔직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꼬마 아이가 30여년이 지난 지금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한두 잔씩 술을 마시는 술꾼이 되었다. ‘홍안’의 소년은 간데없고 어느새 배가 약간 나온 중년의 아저씨만 남았다.

칵테일 ‘맨하탄’(맨해튼)을 만들어 마시다가 딱 아들 또래였을 그 시절 내가 생각이 나, 옆에 있던 아들에게 잔을 내밀었다. 향이나 한번 느껴보라고 내민 잔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더니 “어? 이건 평소 아빠가 마시는 술 같지 않네?”라는 말을 한다. 내친김에 아주 조금만 맛을 보라고 했다. 맛을 본 아들의 한마디. “아후! 도대체 이런 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맨해튼이란 칵테일은 버번(옥수수를 주원료로 만든 미국 위스키)이나 라이(호밀을 주원료로 한 미국 위스키)에 스위트 버무스(레드 와인에 향료를 더하고 알코올 도수를 높여 만드는 강화와인)와 앙고스투라 비터스(주정에 용담과 각종 약재가 들어간 리큐어. 주로 맨해튼, 올드패션드 등의 칵테일을 만들 때 양념처럼 사용됨)를 섞어 만드는 칵테일이다.

윈스턴 처칠 경의 어머니인 제니 제롬이 1870년대 초반 뉴욕의 맨해튼 클럽이라는 곳에서 연회를 주최하면서 처음 이 칵테일을 선보였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칵테일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맛은 강하지만 스위트 버무스(베르무트)와 비터스, 라이위스키의 향이 어우러져 아이도 좋아할 만큼 달큰하면서도 격조 있는 향이 배어나온다. 보통은 젓는 방식으로 만들지만 집에선 믹싱 글라스니 뭐니 준비하기도 귀찮으니 보통은 그냥 분량만 맞춰 술을 섞은 뒤 얼음 넣고 마시곤 한다.

맨해튼을 맛보고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 아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편지를 써봤다.

‘그래, 너 나이 때 아빠도 그랬어. 너도 세월이 지나 지금 아빠 나이가 되면 아빠처럼 약간 배가 나온 아저씨가 되려나? 그래도 아빠보단 멋있는 아저씨가 될 거라고 생각해. 그땐 아마 아빠는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되어 있겠지. 넌 그 나이가 되었을 때 처음 술을 마셨던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까? 뭐든 과하면 좋지 않지만 적당한 선에서 잘 즐기며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빠보다 훨씬 멋진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아빠는 확신해. 지금 아빠 나이까지는 아니더라도 9년 후를 아빠는 즐겁게 기다릴 거야. 같이 술 한잔 제대로 하자 아들. :)’

데렉 아저씨 애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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