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19 20:05
수정 : 2017.04.1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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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처음처럼’과 ’참이슬’. 데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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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데렉의 술, 그리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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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처음처럼’과 ’참이슬’. 데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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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 다니며 위스키나 칵테일을 꽤 오랜 기간 마셔오다 보니 친구들이 위스키를 추천해달라고 할 때가 종종 있다. 보통은 그냥 소주를 마시다가 이야기가 나오는 편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같이 모인 사람들 중 한두 명이 꼭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위스키? 난 양주 잘 모르겠더라. 내가 맛치라 그런가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구별해서 마시는 너는 절대로 맛치일 리가 없다.”
그 친구처럼 스스로를 맛치라고 말하는 경우들이 꽤 있지만 술을 아예 못 마시는 경우가 아니라면 맛치가 아니라 단순히 위스키의 맛을 잘 구별하지 못할 뿐이다. 여러 위스키를 동시에 비교해서 마셔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맛의 영역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훈련의 영역이기도 하다. 아무리 미각을 타고난 사람일지라도 경험과 훈련이 없이는 맛을 구별할 수 없고 진짜 좋은 맛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 천재적인 미각을 타고났다고 해도 여러 와인을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소믈리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음식과 술의 궁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삼겹살과 소주가 어울린다는 걸 알고 있다. 소주와 삼겹살을 같이 즐겨 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와인에 대해 썼던 나의 예전 칼럼을 읽고 마트에 들렀던 분이라면 5000원짜리 레드와인 ‘베가 올리베라스’가 족발, 순대와 꽤 잘 어울린다는 걸 아실 것이다. 이런 음식과 술의 조화는 직접 경험하기 전엔 알 수 없다.
중국 어느 고전에서는 인간의 3대 욕망을 식욕, 색욕, 권력욕으로 분류했다. 권력욕 대신 수면욕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수면은 욕망이라기보다는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에 종류를 선택할 수도 없으니 권력욕이 들어가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이 3대 욕망 중 허락된 것은 식욕밖에 없다. 색욕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사는 현대인에게 권력욕이라니 언감생심일 뿐이다. 인간도 동물이고, 동물은 결국 본능이 충족되어야 행복한 존재인데 이왕 한번 사는 인생, 조금 더 행복하게 살면 좋지 않을까?
바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작은 여행이고, 낯선 장소에서의 첫 경험은 약간의 긴장과 더불어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바가 뭐 그렇게 대단한 곳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위스키와 칵테일’이라는 요리를 파는 음식점인데 요리사가 우리 눈앞에서 요리를 하는 음식점일 뿐이다. 철판요리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먹기 위해 요리사와 소통하듯 맛있는 술을 즐기기 위해 바텐더와 소통하면 된다.
다른 술도 그렇지만 위스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위스키를 조금씩 같이 마셔가며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아예 테이스팅 메뉴를 주문해도 좋겠지만 만약 바의 메뉴에 테이스팅 메뉴가 없다고 해도 “위스키를 잘 모르는데 어디서 한번 마셔보니 맛있더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좀 맛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바텐더에게 요청하면 어느 바의 바텐더든 최선을 다해 위스키를 소개해주고 술에 관련된 설명을 해 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우리가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여러 번 마셔가며 ‘아 내 입맛엔 이거구’ 하고 두 소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왔듯이 위스키도 마찬가지고 칵테일도 마찬가지다. 이 위스키 저 위스키를 맛봐야 ‘내 입맛엔 셰리통에 숙성한 위스키가 맞구나’ 또는 ‘스모키한 향이 강한 위스키가 딱이네’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칵테일도 시원한 진토닉인지, 드라이한 진마티니인지 맛을 봐야 구별할 수 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이제 어떤 바텐더가 내 입맛에 맞는 칵테일을 만드는지를 알게 된다.
맛은 문화이고 술은 그 문화의 정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의 새로운 문화를 느끼는 여행을 바에서 떠나 보는 건 어떨까? 평소에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구별해 마시던 그곳에서 ‘맥캘란’과 ‘발렌타인’을 비교해가며 먹어본다면 삶이 조금 더 풍부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데렉 아저씨 애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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