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7.26 20:36
수정 : 2016.07.26 20:40
민심에 닿지 못한 ‘갑오년 꿈’
|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
1894년 7월27일 갑오개혁이 시작되었다. 책임자는 김홍집이었지만 실제 업무는 유길준이 맡았다는 의견이 많다. 얼마나 바라던 기회였던가! 그러나 너무 서둘렀던 걸까. 무리한 개혁에 민심은 등을 돌렸고, 유길준은 쫓겨나 일본으로 망명했다.
유길준의 경력은 화려하다.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었다. 문물 개화의 실무를 맡을 인재로 컸다. 그런데 지인들이 1884년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하는 바람에 일이 꼬였다. 1885년 귀국하자마자 잡혀가 7년 동안이나 연금 상태로 갇혀 지냈다. 배워온 지식을 써먹을 기회도 없이 말이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유길준은 잘 알았다. 그러나 대중 계몽을 위해 쓴 <서유견문>은 1895년 이전에 출판도 못 했고, 책을 내고도 유통이 안 돼 소수 엘리트만 책을 읽었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서재필을 불러들이며 신문 창간을 준비했지만, 정작 <독립신문>이 세상에 나온 1896년은 유길준이 숙청된 다음이었다. <노동야학독본>은 제대로 출판되었지만 1908년은 너무 늦은 때였다. 망국을 2년 앞둔 상황에서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일하자’는 책을 내며 유길준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김태권 만화가
|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