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22 20:54
수정 : 2017.08.22 21:03
마르그리트 발루아 (1553~1615)
1572년 8월23일, ‘바르톨로메오의 밤’ 대학살이 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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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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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으로 자란 마르그리트 공주, 개신교 신랑 앙리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 종교전쟁에 지친 사람들은 기대했다, 이 결혼으로 평화가 오기를. 그런데 웬일인가. ‘피의 결혼식’이 되고 말았다. 신랑 쪽 하객이 몰살당한 것이다. 바르톨로메오 축일 전날 밤부터 가톨릭 세력이 개신교도들을 학살했다. 1572년 8월23일, 악명 높은 ‘바르톨로메오의 밤’. 학살의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은 모후 카트린, 다름 아닌 마르그리트의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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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오금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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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계속된다. 1580년대 후반에 일어난 싸움은 ‘세 앙리의 전쟁’이라 불렸다. 첫 번째 앙리는 가톨릭 강경파의 수장이자 공주의 내연남이던 기즈 공작. 암살당했다. 두 번째 앙리도 암살당했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인기 없던 임금, 공주의 오라비 앙리 3세. 프랑스를 차지한 세 번째 앙리는 마르그리트의 남편. 이 사람이 유명한 앙리 4세다.
발루아 왕조가 무너지고 부르봉 왕조가 들어섰다. 일찍이 학살의 때에 공주는 남편을 구해주었지만, 이제는 몰락한 왕가의 생존자일 뿐. 마르그리트는 결국 앙리와 이혼. 왕후의 칭호는 유지하는 조건이었다. <여왕 마고>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한 사람이 왕후 마르그리트였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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