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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5 15:03 수정 : 2016.07.06 13:56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국회 의원회관 게시판 앞을 한 보좌관이 전화 통화를 하며 지나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전화가 울렸다. 김OO이다. ××일보 여당 2진(해당 언론사의 여당 출입기자 중 연조가 2번째라는 뜻). 알고 지낸 지 7년째다.

“선배, 내년 대선 때 티케이(TK)와 충청이 연대할 가능성에 대해 기사를 써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도는 얘기 없어요?”(기자들은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을 ‘선배’라고 부른다.)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자른다. “△△△ 의원은 선배랑 반대로 말하던데….” 누가 묻는 건지, 누가 답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대화가 한참 이어진다. 오후에는 또다른 기자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내년 대선이 3자 구도로 치러질지에 대해 내 생각이 어떤지 얘기해달란다. 정작 해야 할 업무는 오늘도 오후 5시에야 시작했다. 이 정도면 업무방해 수준이다. 그러나 기자들과의 끈은 놓을 수 없다. 대화 과정에서 나도 중요한 정보들을 얻기 때문이다.

보좌관의 세계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정보)투쟁’이다. 정보가 없으면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정보가 있으면 서로 오라고 한다. ‘정보’를 손에 쥔 보좌관만 살아남는다. 기자들은 정보를 얻는 중요한 소스다. 그러나 모두가 공유하는 정보를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다양한 버전으로 들을 수 있는 통로일 뿐이다. 나만의 정보를 얻으려면 나만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에겐 4~5명의 ‘빨대’(내부 협조자)가 있다. 국정원·검찰·감사원·국세청 등 주요 사정기관마다 그만큼씩 있다는 뜻이다. 다른 보좌관들에 비해 많은 편이다. 보좌관 생활 시작할 때부터 맺은 인연에 학연을 보태고, 다시 그들로부터 한다리씩 연을 넓혀가며 꾸려냈다. 20년이 넘게 걸렸다. 빨대들의 정보는 질이 높다. 이들이 내게 어떤 정보를 줬는지 여기에 써볼까 오래 고민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힘들겠다.(정말 난리가 날 것 같다.) 대신 아주 오래전 얘기 하나만 밝히겠다.

장수 보좌관의 요건은 정보력
국정원·검찰 등 인맥 관리 필수
국회 동향 건네며 고급정보 얻어
SNS 시대 더 치열해진 ‘정보사냥’

오래 전 국회 윤리위원회에 우리 당 의원 몇명이 제소됐다. 영감(보좌진들이 국회의원을 부를 때 쓰는 은어)은 윤리위 위원이었다. 물귀신 작전이 필요했다. 영감은 ‘상대 당 의원 하나를 얽어 넣으라’고 했다. 빨대들에게 ‘상대당 의원 한명 윤리위에 보낼 건수가 필요한데…’라고 하자 오래지 않아 경찰 빨대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대당 의원이 최근 한 술집에서 주먹을 휘둘렀다는 내용이었다.(역시 이런 정보는 경찰이 빠르다.) 나는 이 정보를 모 주간지 기자에게 넘겼고 곧 기사가 나왔다. 이 의원은 여지없이 윤리위에 넘겨졌다. 영감은 상대당과 협상할 여지가 생겼다며 마음을 놓았다.(너무 나쁜 짓이라고 욕하지 마시라. 오래 전 일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크게 힘들진 않다. 그들이 원하는 건 국회 돌아가는 상황(이건 내 입장에선 정보도 아니다)을 가끔 들려주거나, 곤란한 정보를 요청한 다른 방 보좌관에게 본인 대신 자기네 부처 입장을 전해주는 것 정도다. 아, 인사도 중요하다. 나는 ㄱ의 상사를 만날 때 ‘그 사람 참 평판이 좋더군요’, ㄴ이 속한 부처 실장에겐 ‘(ㄴ이 소속된) 그 국이 일을 참 잘하네요’라고 말해준다. 이 정도면 받은 만큼 준 셈이다.

‘빨대 모임’은 두개다. 두달에 한번 만나는 정기모임과 ‘번개’로만 만나는 수시모임이 있다. 나는 그들과 휴대전화 통화로만 연락한다. 외국산 메신저 프로그램? 그런 건 믿지 않는다.(휴대전화 도청은 안된다고 내 빨대가 알려줬다. 믿어도 된다. 아니면 말고.)

15년 전쯤만 해도 인터넷 정보가 풍부하지 않아 조금만 부지런하면 정보를 챙길 수 있었다. 나는 주로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와 <아사히>, <요미우리>, <인민일보>, <프라우다>(러시아 대표 일간신문)의 영어판 등을 챙기며 정보를 얻곤 했다. 백악관 뉴스브리핑도 꼼꼼히 다시 읽어보면 더러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한번은 월스트리트 저널을 보다가 대박을 터트린 적이 있다. 기사 내용에 ‘디제이(DJ)의 은총(Bless)'이라는 말이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벨캐나다(BCI)와 에이아이지(AIG)가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던 한솔앰닷컴을 케이티(KT)에 팔았는데 불과 1년 반 만에 투자액의 5배가 넘는 1조5000억이라는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벨캐나다의 버니 회장과 김대중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였다. 이러한 보도내용을 기초로 관련 자료들을 모았고, 조사한 내용을 국정감사에서 공개하자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지금은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 인터넷 자료를 뒤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정보수집 수단이 되어버렸다. 특히 에스엔에스의 발달로 웬만한 정보는 1시간도 채 안돼 국회 내부에 모두 퍼진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정보)투쟁’이 극에 달했다는 뜻이다. 20대 국회에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대거 낙선했다. 새누리당 출신 보좌관들 구직난이 극심하다. 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에 어디가서 몸 비빌 데를 구할까 싶어 가슴이 아프다. 그렇다고 내 빨대를 넘겨줄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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