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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23 15:31 수정 : 2016.08.23 16:17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_인사청문회의 세계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2013년 1월2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강기정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전달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청와대가 내각을 소폭 개편했다. 이것은 국회에서 정부 각 부처 수장의 자격을 논하는 인사청문회가 시작된다는 뜻이며 방어자인 장관 후보자 쪽도, 공격자인 국회의원실 쪽도 극도의 긴장감 속에 보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에 인사청문회요청안이 도착하면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인사청문위원의 보좌진과 해당 부처 담당 기자들은 ‘누가 먼저 감춰진 문제를 찾아낼 것이냐’를 두고 요청안의 단어 하나, 숫자 하나까지 샅샅이 뒤지는 ‘초단위 레이스’를 시작한다.

탈세·음주운전·위장전입 등 도덕성·능력 검증 목록만 100여개

국회 생활 10여년 동안 그런 숨막히는 인사청문회를 적어도 서른번은 겪었다. 반복된 경험은 요령을 만든다. 도덕성 검증과 업무 능력 검증을 위한 기본자료 목록을 100여개쯤 미리 만들고, 요청안이 국회에 도착하자마자 자료 요청을 한다. 예를 들면 국세청에 세금납부 상세내역을, 검찰과 경찰청에 벌금·범칙금·과태료 부과내역을, 행정자치부에 주소이전 현황을 요청하는 식이다. 인사청문회에 단골로 등장하는 세금탈루, 음주운전, 위장전입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 부처가 제공하는 자료만 손에 쥔 채 인사청문회에 임할 순 없다. ‘불굴의 의지’로 후보자에게서 직접 받아낸 자료가 대박을 치는 경우가 많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때의 일이다. 이 후보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재직 때 업무 수행을 위해 지급되는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유용한 의혹을 받았다. 이 후보자가 특정업무경비를 넣어두고 썼다는 개인통장 내역이 필요했다. 아무리 요구해도 주지 않았다. 당연하다. 보통 후보자들은 ‘사생활’이라며 절대 제출하지 않거나, 청문회 당일 오후 마지못해 내놓는 수법을 쓴다. 어쩌겠는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헌법재판소 청문회 준비팀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갔다. ‘자료를 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루를 버텼다.

“자료 안 주면 안 가”… 불굴의 의지로 빚어낸 ‘특정업무경비’ 대박

그렇게 손에 넣은 이 후보자의 통장 내역 사본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특정업무경비 중 매달 300만~500만원가량, 총 3억2000만원을 사적으로 사용한 듯했다. 그 돈은 신용카드 결제대금, 보험료, 자녀 유학비 등으로 쓰인 것으로 보였다. 일부는 자신의 펀드계좌로 자동이체되기도 했다. 그는 후보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이 후보자는 횡령 혐의로 고발당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훗날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했지만 변호사로 개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인물이 헌법재판소장이 됐다면 어땠을까. 집요함이 밝혀낸 진실은 결코 작지 않았다.(*편집자주: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건 ‘범죄 의도가 없었다’는 점과 ‘다른 개인 계좌에서 출금한 돈을 공적인 용도에 사용했다’는 점 등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현장만이 답을 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쌀 직불금 부당수령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직접 경작 여부를 탐문하고 다닌 일도 있었고, 위장전입을 확인하기 위해 후보자가 사는 동네에 오래 근무했다는 아파트 경비원을 수소문해 찾아다니기도 했다. 후보자 소유 건물에 입주해 있는 업체가 불법 유흥업소라는 걸 확인하려고 한밤중에 보좌진을 손님으로 위장해 들여보낸 일도 있었다.

경남도지사 출신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때의 일이다. 도지사 공관 가사도우미를 힘들게 접촉했다. 그는 김 후보자가 도지사이던 시절 그의 배우자를 수행했고, 심지어 시댁 제사 일까지 도왔다고 증언했다. 김 후보자의 부인이 도지사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한 일까지 드러났다. 김 후보자는 이 외에도 많은 비리 의혹을 받았고 결국 자진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파상공격 뒤 ‘나는 깨끗한가’ 성찰이 스멀스멀

최근에는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2014년 6월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조국 서울대 교수 등에게 “북한 가서 살 자유가 있다”고 한 트위터 글이 논란이 됐다. 정 후보자는 이 글 외에도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 트위터 글을 대거 삭제하기도 했다. 청문회장에서 사과했지만 다른 의혹들까지 겹쳐 결국 물러나야 했다.

나는 공격수다. 검증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문득, ‘나는 한 점 부끄럼없이 살고 있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내가 인사청문 후보자가 된다면 자신있게 임할 수 있을까’ 등의 생각이 피어오른다. 쉽게 답하기 어렵다. 일단, 다른 문제는 모르겠고 적어도 내가 제기했던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떳떳하게 살자고 다짐한다. 그것도 어려워지면, 그때는 공격수에서 물러나는 수밖에.

자꾸만 생각이 많아지는 한 공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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