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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1 05:01 수정 : 2016.09.21 09:48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왕’보좌관, 안봉근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 박근혜 대통령(오른쪽)이 한나라당 의원 시절인 2011년 3월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안 비서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왕보좌관'입니다. 보좌관 중에 ‘왕’이 어디에 있냐고요? 물론 없죠. 그럼 왕씨 성을 가졌냐고요? 그것도 아닙니다. 혹시 박근혜 대통령의 ‘3인방’에 제가 포함되냐고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면 왜 ‘왕' 자를 함부로 거들먹거리냐고요? 우선 제 소개를 해보죠. 지난 10여년 동안 국회 인턴·비서·비서관을 차근차근 거쳐 지금은 보좌관에 봉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모셨던 분은 여섯, 그중엔 초선·재선을 포함해 최고위원, 당 대표, 대선주자급 국회의원도 있었죠. 그러다 보니 단순 비서 업무(일정·수행 등), 입법 보좌, 정무 보좌 등 의정활동의 실무는 모두 거쳤습니다. 동료들이 저를 ‘왕보좌관’이라고 부르는 이유죠. 하지만 전 진짜 ‘왕’보좌관이 되고 싶어요. 대선에서 ‘왕’을 만들어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싶거든요.


‘왕’을 모시진 못했지만 당대표라도…

아직 ‘왕’을 모셔보진 못했지만, 그동안 제게 가장 소중한 경험은 아무래도 당 대표를 보좌했던 걸 꼽을 수 있겠습니다. 보좌관은 누구보다도 당 대표와 가까이 있고,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해 원외 지역위원장, 당직자들이 대표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고 싶을 때, 저를 통해 말을 전하죠. 고위 당직을 맡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제가 좋은 통로가 됩니다. 특히 당 대표 임기 중 총선·지방선거 같은 큰 선거가 있을 때엔 대표 보좌관의 몸값은 훌쩍 뛰어오릅니다. 모시는 분의 질문에 항상 대비하기 위해 현안을 꼼꼼히 챙기는 힘든 과정도 있지만, 당의 중요 방향과 정책을 결정할 때 제 의견이 반영되면 보람도 큽니다. 대표를 보좌하면서 인사·전략·정책의 ‘막후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건 정말 짜릿한 일입니다.


점령군처럼 안 보이려 당직자들에게 고개 숙이고

당 대표의 보좌관은 ‘처신’도 아주 중요합니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당 대표가 선출되면, 보좌관들은 비서실에 들어가거나 보좌관직을 유지하면서 당 대표 업무를 보좌하게 됩니다. 이때가 아주 중요해요. 막후 역할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스르르 존재감이 없어지거나. 아무튼, 전당대회 이후 한두 달 동안 당 대표는 보좌관을 비롯해 선거 캠프 출신 인사들에게 많이 의지해요. 이때 본래 당에서 일해온 경험 많은 당직자들은 캠프 출신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신임 당 대표 스타일에 적응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나 ‘생각이 짧거나 경험이 얕은’ 당직자들은, ‘비당직자’가 ‘당직자’에게 일을 시킨다고 ‘점령군’이라고 비아냥대며 태업을 할 때도 많아요. 일부 당직자들은 자신과 다른 계파의 정치인이 당 대표가 되면, 일부러 ‘한직’으로 인사이동을 요구하기도 하죠. 정당도 무시 못할 큰 조직이기 때문에 당 대표가 한번 움직이려면 일정팀·메시지팀·공보실·조직국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때 실무 당직자들의 활약이 없으면 어디선가 반드시 구멍이 생깁니다. 이를 막기 위해 대표의 보좌관들은 동분서주, 전전긍긍합니다. 특히 명절이나 연휴에 대표의 ‘정치 동선’을 짤 때가 그랬어요. 대표는 지방을 순회하거나 현안과 관련한 민생 행보를 하고 싶어했는데, 휴일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당직자들은 당연히 불만이었죠. 다들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아주 평범한 일정’을 내왔는데, 당장 대표의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저는 마음을 졸이며 당직자들에게 일일이 부탁 전화를 돌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소극적인 당직자들에 맞서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저처럼 유약한 사람들은 계속 어르고 달래며 굽신거린답니다. 나이 어린 당직자들에게도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요.


“타 죽지 않을 만큼 태양 가까이 가라”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보좌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대표 금단현상’이라는 것이 있어요. 매일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 폭주하는 전화, 주체 못할 정도로 분주한 일정에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조용한 생활로 돌아가면, 대부분 소외감을 느낍니다. 보좌관들은 ‘평범한 국회의원’으로 모드 전환이 부드럽게 이뤄지도록 심기를 잘 보좌해야 합니다. 이때는 주로 평소 가깝게 지냈던 의원·기자들과의 오찬·만찬 일정을 잡는 게 최고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가 전당대회 치를 때만큼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하게 ‘왕보좌관’을 해본 사람들은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마라, 타 죽는다”고 말합니다. 권력 주변에 있으면서 권력의 속성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제겐 참 와닿는 말이에요. 저의 견해가 정국의 변화를 주도하는 데 일조해 뿌듯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기와 질투, 모함에 시달리며 속 많이 끓였어요. 그럼에도 당 대표 보좌관 해볼 만하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당 대표 보좌관을 경험한 저는 그 전보다 많이 성장했다고 자평합니다. 특히 여느 보좌관들보다 정치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짐을 느끼지요. 태양에 타 죽지 않을 만큼 가까이에서 태양을 느껴보는 것도 보좌관으로서 소중한 경험이 될 테니까요.

‘태양’이 두렵지 않은 한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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