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27 17:35
수정 : 2016.10.27 17:45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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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흠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도중 손전화로 자신의 이름을 포털누리집에서 검색해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이 기사의 전체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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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검색. 국회의원이 눈뜨자마자 하는 첫 번째 일과다. 잠들기 직전 하는 마지막 작업도 내 이름 검색이다. 쉴 새 없는 일정 중 잠깐 짬이 날 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내 이름 검색이다. 국회의원에게 언론보도는 유권자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국회의원은 밥값 제대로 하는 사람이고, 언론에 이름 한번 거론되지 않는 국회의원은 실컷 뽑아줬더니 대체 뭐하냐는 핀잔듣기 일쑤다.
신문·방송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치생명의 생사가 4년에 한번 결정되는 국회의원에게 선거가 대학입시라면, 언론보도는 매일 치르는 쪽지시험과도 같다. 가중치가 대단히 높은 쪽지시험이다. 한 번의 쪽지시험도 무시하기 어렵다. 초선 때 쪽지시험을 소홀히 했다가 4년 후 선거에서 홍역을 치른 국회의원이라면 언론보도 집착은 대단하다. 인터넷 포털에서 ‘내 이름 검색’ 했다가 어제 그 내용이면 바로 보좌관 호출이다. 나는 국가대표급으로 일하는데 언론홍보는 동네 조기축구수준이다, 어제 보도자료 안 뿌렸냐, 오늘은 어떤 보도자료 배포할 계획이냐, 영감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카카오톡이 일상이 된 요즘은 영감의 쪼인트도 일상이다. ‘어제 발언 왜 보도 안됐어? 오늘 보도자료 기자한테 꼭 쓰라고 해.’ 영감의 카톡 메시지는 처량하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기자가 국회의원 전속 홍보맨이란말인가.
영감이 저녁 9시 메인 뉴스에 노출된 다음 날, 영감의 얼굴에는 화색이 끊이지 않는다. 지역구 순방을 갔더니 시장 상인들이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어제 TV 봤다면서 이른 바 ‘화면발도 좋다’는 덕담을 건넬 때 영감은 이미 구름 위를 걷고 있다. 동네 어린이들까지 아는 척 할라치면 대권도전도 남일 만은 아닌듯하다. 일간신문에서 1면에라도 보도되는 날에는 동네잔치라도 열고 싶다. 해당 신문의 기사를 스크랩하여 액자에 넣는 것도 모자라 컬러 복사하여 지역구 사무실에도 대문짝만하게 붙여둔다. 일간신문 2면에 보도되는 것도 흔치 않는 일인데, 보좌관에게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훈계다. 내용은 1면감인데 보좌관이 능력이 없어서 2면으로 기사가 밀렸다는 이유다. 신문기자 출신 영감님은 면수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단수까지도 꼼꼼하게 따지는 직업정신을 발휘한다. 5단 기사감이 단신으로 다뤄진 것이 말이되냐, 지금 당장 기자에게 항의하라는 고성도 이어진다.
동료의원이 언론의 주인공 되면 배가 아프다
영감이 가장 심사가 뒤틀리는 경우는 동료 국회의원이 언론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다. “아니 대체 쟤가 뭐가 잘났어? 콘텐츠는 내가 훨씬 나은데 보좌관이 홍보를 못해서 내가 이 모양이야. 지난주에 2면에 보도되더니, 오늘은 저녁뉴스에 나왔어. 그방 보좌관 뭐하는 친구인지 한번 알아봐.” 자존심이 구겨진다. 1년 365일 매일 1면에 대서특필 되어야 만족하겠다는 것인지 영감의 요구는 끝도 없다. 국회의원의 관심 영역이 다르고, 1면에 대서특필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그 다음주 보좌관은 면직이고, 호형호제하는 기자가 100명이 넘는다는 새로운 보좌관이 영입됐다.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다. 삶으로 체득된 민심을 읽는 감각과 정치의 판세를 읽는 통찰력으로 무장한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 중 상당수는 잊혀지지 않는 한줄의 메시지 생산의 귀재들이다. 그러다보니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 보좌관은 간도 쓸개도 상실한지 오래다.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을 처음 모셨다는 보좌관 A는 영감에게 자신의 보도자료가 빨간펜으로 난자당할 때마다 사직을 수없이 갈등했다고 한다.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토씨하나까지 뒤집히고 맞춤법까지 지적당할 때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초선임에도 유명세가 4선 국회의원에게 뒤지지 않는 국회의원A는 보좌진과 격의없이 회의하는 장면을 방송에 내보내라, 구내식당에서 소박하게 식사하는 모습을 찍게하라, 방송에 유독 집착하기도 한다. 유독 TV토론에 집착하는 영감님도 있다. 장시간 노출이 매력인 것은 분명하나 발음도 불분명하고 말솜씨도 없는 영감을 TV토론에 내보낸 보좌관은 노심초사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나쁜 뉴스 뜨면 ‘진돗개 1호’…애먼 보좌관만 잡아
인터넷 포털 기사가 때로는 일간신문 1면 보도나 텔레비전 9시 뉴스 보도보다 가치있는 세상이 됐다. 영감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인터넷 포털 뉴스까지 확산됐다. 고약한 일은 부정적인 기사다. 종이신문은 다시 보기 어렵지만, 포털 뉴스는 휘발성이 없다. 포털 연관검색어에 영감 이름과 부정적인 단어가 함께 엮이면 날이면 의원실에는 진돗개 1호가 발령된다. 영감은 당장 연관검색어를 삭제하라고 성화다. 그것하나 해결 못하냐며 보좌관의 무능을 성토한다. 포털 관계자에게 읍소도 하고, 법적인 조치 운운하며 협박도 해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포털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적으로 연관검색어가 만들어진다는 앵무새 같은 답을 영감에도 그대로 전할 수도 없다. 부정적인 뉴스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서비스를 통해 며칠째 확대 재생산될때는 대재앙이다. 새로운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이른바 물타기를 시도하지만 좋은 뉴스는 뉴스가 아닌 법. 나쁜 뉴스는 거침없이 확산된다. 해명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섣부른 해명이 불에 기름을 붓는 겪이 되지 않을까. 우왕좌왕하는 사이 더 나쁜 뉴스가 등장하면서 영감에 대한 나쁜 뉴스는 생명을 다한다.
이름을 검색하여 뉴스를 확인하는 사람은 아마도 해당 국회의원을 포함한 보좌관과 비서관 등 5명 안팎일 것이다. 눈앞에 스치는 뉴스 조차 다 보기 힘든 세상에 누가 이름 검색으로 뉴스를 확인하겠는가. 그럼에도 영감에게는 오늘 ‘내 이름 검색’ 결과가 지상과제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다를까. 나 역시 이름 검색의 노예가 될 듯싶다. 의정활동을 국민에게 알려야하는 것은 절대불변 국회의원의 의무이며, 언론의 평가에 예민해야 하는 것 역시 국회의원의 국민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만은 절대 잊지 말자. 조간신문에 이름한자 안 나올지라도 고독한 사명감으로 반드시 출어야 할 사회적 난제풀이에 집중하는 국회의원도 있음을 잊지 말자. 언론보도가 있기 전에 의정활동이 있다. 우리가 언론보도만을 국회의원 평가의 유일한 잣대로 삼을 때 신문에 보도되지 않는 봄여름의 땀을 흘린 국회의원은 어디에 설 것인가. 모두가 가을의 열매를 들고 카메라 앞에 몰려들 때 씨 뿌리는 자 조차 없는 비극의 종말이 우리 앞에 있을 것이다.
검색의 노예가 된 한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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