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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24 17:51 수정 : 2017.01.24 18:01

정치BAR_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_직접 민주주의 무기 ‘정치 후원금’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 머슴이 되고픈 의원의 손과 발과 머리가 되는 사람들이 보좌관입니다. 정치부터 정책까지 의원과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치 현장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익명의 여러 보좌관들이 보고 듣고 느낀 ‘정치의 속살’을 전합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12월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3차 청문회에서 신상발언을 하던 도중 자신에게 온 ‘18원 후원금 폭탄’ 문자를 보여주려고 휴대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탄핵정국을 거치며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 의식’이 높아졌다. 촛불집회의 뜨거운 열기만큼 국민들은 온·오프라인에서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즉각적으로 의사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유출된 이래로, 여야 가릴 것 없이 의원들과 보좌진의 전화번호가 누리꾼들 사이에 공유됐다. 이를 계기로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소통과 후원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사이다’ 발언 의원들 ‘대박’

이제 국민들은 의원의 성과와 활약상, 그리고 ‘태도’에 따라 마치 ‘아프리카 티브이(TV)에서 별풍선을 쏘듯’ 후원금을 쏜다. 국민들의 속을 뻥 뚫는 사이다 발언을 날리거나, 개성 넘치는 질의가 인기를 얻어 스타 의원으로 등극하면 후원금도 ‘잭팟’을 맞는다. 가령 박 대통령 탄핵안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명단을 공개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당의 동료 의원들은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지만 야권 지지자들에겐 ‘속시원한 행동’이었다. 그의 후원금 계좌는 명단 공개 이후 3억원을 다 채웠다고 한다(국회의원들은 선거가 있는 해엔 3억원, 선거가 없는 해엔 1억5천만원까지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 표 의원은 자신의 후원금 계정이 꽉 차자, 평소 친한 동료 의원들을 에스엔에스(SNS)로 홍보해 후원인을 붙여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후원금 한 푼이 아쉬운 ‘보통 의원’들이 “내 이름도 트위터에 좀 끼워넣어달라”며 표 의원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부탁을 했다고 한다.

표 의원처럼 수월하게 후원금을 채우면야 보좌관들도 신나겠지만, 대다수 의원실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보좌진은 모시는 의원을 대중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전략을 짜내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한다. 정치 만담이 꽃피는 커뮤니티 현황을 파악하고, 그곳에서 의원이 화제가 될 수 있도록 공개 발언 자료에 요새 유명한 문구들을 끼워넣는다. 일부러 의원의 못나고 딱한 모습을 담아 ‘셀프 디스’ 하는 영상물을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든 팬심에 호소해보자는 것이다.

탄핵 반대 의원들 ‘18원 공격’ 쓰나미

그러나 올해 의원과 보좌진에게 가장 괴로운 건 뭐니 뭐니 해도 ‘18원 후원금’이다. 물론 이것 또한 국민들의 민주적 의사표현의 방법임을 인정해야 하지만, 막상 당하는 입장이 되면 울고 싶어진다. 지난달 9일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18원 후원금’이 쏟아지자, 여당 보좌진은 멘붕에 빠졌다. 일단, 18원이라는 어감도 어감이거니와 회계 실무를 맡아야 하는 보좌진은 영수증 발급 등 사후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 것이다. 영수증 발급과 우편 발송 비용만 쳐도 300원이 넘는데다 후원금 영수증을 출력해 우편으로 부치고, 환불을 요구할 경우 환불계좌를 받아 후원금을 반환하고, 관련 전화를 응대하는 사람은 해당 의원이 아니라 보좌진인 것이다.

다행히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자금법 17조 5항에 따라 1만원 미만인 ‘18원 후원금’은 따로 후원인에게 영수증 발급을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확인해줬기 때문에, 보좌진은 한시름 놓게 됐다. 그러나 김광진 전 민주당 의원이 ‘얄밉게도’ 트위터를 통해 18원을 내고 환불을 요청하면 더 번거롭게 할 수 있다고 ‘요령’을 알려주자, 보좌진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금치산자의 기부 행위이거나 불법 후원금이 아닌 경우엔 후원금을 환불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게 선관위의 유권해석이다.

‘친문패권’ 비판한 민주당 의원들도 불똥

아무튼, 지난달까지만 해도 여당 보좌진의 ‘18원 마음고생’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는데, 이달 초 더불어민주당에서 ‘개헌 전략 보고서’ 파동이 일어나자 상황이 변했다. ‘친문패권’을 비판한 의원들에게 18원 후원금이 쇄도한 것이다. 무엇보다 큰 스트레스는 18원 입금 뒤에 걸려오는 ‘18원 부대’의 전화 욕설과 비난이다. 의원실 막내 인턴은 항의가 잠잠해질 때까지 불이 나는 전화기에 매달리느라 다른 업무는 손도 댈 수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니, 계파주의의 폐해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그냥 우리 의원은 공개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의원들에게 쏟아지는 ‘문자 폭탄’도 골칫거리였다. 결국 일부 의원들은 전화번호를 바꿔야 했고, 보좌진은 전화번호부에서 일일이 사람들을 골라 전화번호 변경 공지를 해야 했다.

격려성 소액 후원금, 회계 처리 복잡해도 가슴 벅차

사실, 후원금 모금은 의원의 직업, 학벌 등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했거나 일류 대학을 졸업하든가 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의원들은 이미 상류층 인맥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1인당 50만~100만원가량의 후원금을 받는 게 다반사다. 심지어 5만원 이하는 받아본 적이 없다는 의원실도 있다. 반면, 정당인·시민사회단체 출신 정치인들은 사정이 다르다. 정치후원금은 최대 10만원 세액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10만원 후원도 많지만, 1천~2천원 소액 후원도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거액 후원금을 주로 받는 의원실의 보좌관은 선관위에 회계보고를 할 때 파일 몇개만 들고 가지만, 천원 단위의 소액 후원금이 대다수인 의원실 보좌진은 선관위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분량의 서류를 낑낑대며 들고 가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회계 처리가 귀찮아도 보좌진에게 뿌듯한 순간은, 청문회나 국정조사특위, 상임위 활동에서 우리 의원이 높은 평가를 받아 국민들로부터 ‘개미 후원금’이 쏟아질 때다. 양손에 서류 보따리를 들고 휘청대며 선관위에 갈지라도,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은 의원뿐 아니라 ‘나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후원금에 울고 웃는 한 보좌관

*그동안 ‘보좌관 Z의 여의도 일기’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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