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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13 21:26 수정 : 2016.07.14 10:58

[매거진 esc] 마포 김사장의 찌질한 사생활
심심풀이 취미 ‘에로비디오 빌려보기’가 낳은 비극

한때 비디오대여점은 피끓는 청춘의 은밀한 휴식처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왓챠플레이나 넷플릭스로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영화 보기’를 시작한 분들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극장 밖에서 영화를 보려면 비디오대여점에 가야 했다. 동네마다 몇 개씩 들어선 편의점에 없는 물건이 없는 것처럼 비디오대여점 역시 딱 편의점만 한 크기에 온갖 영화를 다 갖춰놓았다. 그곳에 가면 원하는 영화를 비디오테이프라는 형태로 대여해 준다. 기간은 ‘신프로’가 1박2일, ‘구프로’가 3박4일, 늦으면 연체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꽤 번거롭다. 세상에 연체료 무는 걸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좀 강박적이어서 미처 다 보지 못한 테이프도 마감일에는 틀림없이 반납했다. 대여료보다 연체료가 쌌지만 일단 돌려줬다가 다시 빌리는 한이 있어도 대여일을 준수했다. 우수회원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신프로가 출시되자마자 콜을 받는다거나 1, 2부로 나뉜 구프로는 반값에 빌려보는 특혜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처럼 우수한 평가를 받은 나도 조심스러울 때가 있었으니 오늘은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를 한 자락 읊조려 볼까 한다.

제대하자마자 나는 미아리에 작은 전셋집을 얻어 독립했다. 교통도 불편하고 세탁기도 없었지만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오랜 바람이었다. 하필 미아리였던 까닭은 그 동네에 친한 이들이 여럿 살았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빨랫감을 들고 선배네 세탁기 신세를 져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생활비는 아무리 아껴도 부모님에게 얹혀살 때보다는 많이 들었다. 등록금도 내 손으로 벌어야 했기 때문에 곧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과외만으로는 어렵겠다 싶어서 학원도 알아보았다. 집 근처에 있는 보습학원이었다. 일주일에 사흘 강의하고 한 달에 80만원을 받기로 했다. 그 정도면 어떻게든 생활을 꾸리고 남은 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중등부 두 반과 고등부 한 반을 맡아 국어를 가르쳤다. 다행히 학생들은 잘 따랐다. ‘수학능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재미난 책을 잔뜩 읽어두는 게 장땡’이라는 어쭙잖은 지론에 따라 국어 시간에는 늘 재미난 소설 얘기를 해주었으니까. 어쩌면 강사들 중에 내가 가장 젊고 잘생겼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주장에는 통렬한 비난이 잔뜩 쏟아질 것 같으니 관두겠다.

학교에서는 학생식당 설거지와 문과대학 자판기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학기 동안 식판을 닦고 음료수 캔을 채우면 ‘생협’에서 180만원을 장학금 형태로 지급해 주었다. 어차피 수업 사이사이 비는 시간에 딱히 할 일도 없는데다 현역들에게 성적으로 이길 자신이 없어 ‘아쉬운 대로 이렇게나마’ 하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다. 학교 수업+생협 아르바이트+과외+학원 강의로 5일을 보내고 나면 뭔가 열심히 살았다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물론 정신적으로만 좋았고 몸은 말도 못하게 피곤했다. 주말에는 겨우 빨래 정도를 하고 잠자기 바빴다.

비디오대여점 번성하던 시절
‘작품’ 보러 6달 드나들던 가게
주인이 갑자기 말을 건다
“우리 딸, 선생님이시죠?

유일한 취미는 비디오를 보는 거였다. 느지막이 일어나 김밥천국에서 요기를 하고 맥주와 오징어땅콩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집 앞 대여점에 들러 영화를 빌렸다. 홍콩영화가 동네 비디오가게를 석권하던 시절이었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없이 종초홍, 오천련, 장만옥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으면 덮어놓고 봤다. 가끔, 아주 가끔은 에로 영화도 빌렸다. 다만 이때는 홍콩 비(B)급 영화 말고 누가 얼핏 쳐다봐도 명작이라고 여길 만한 제목의 영화를 같이 빌렸다.

명작 영화 사이에 숨겨 빌려보곤 했던 에로 비디오. <한겨레> 자료사진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박하사랑>을 고른다. (2)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을 고른다. (3)<희생>을 위에 놓고 <박하사랑>은 제목이 보이지 않도록 아래로 포개서 카운터로 간다. (4)“혹시 이거 <박하사탕>이랑 착각하신 거 아니죠?”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생각하며 대여점 주인이 바코드를 입력하는 동안 먼 산을 쳐다본다. (5)이것은 ‘박 하사’와 ‘박 하사랑 하는 여자’의 얘기지만 수준은 <박하사탕>과 비슷할 거라고 자위하며 대여점을 빠져나온다.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카운터를 보는 대여점에서는 차마 빌리지 못하고 옆 동네까지 원정을 가기도 했는데 이사한 집 근처 대여점은 남자 사장님이라 그나마 덜 불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이사하고 6개월쯤 지났을까. 평소처럼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명작 한 편과 에로 한 편을 들고 나가려는 참에 주인아저씨가 “저기” 하며 나를 불렀다. 뭐지. 지금껏 무뚝뚝하기 그지없던 아저씨가 갑자기 왜 부른 거지. 불안이 엄습했다. “저, 우리 민경이, 국어 선생님이시죠?” “네?” “요 앞 보습학원에서… 제가 민경이 애비….” “아.” 이럴 수가(털썩). 내가 국어를 가르치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의 학부형이었던 거다. “우리 민경이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오랜 지병인 듯 아저씨는 항상 목발을 옆에 두고 있었는데 굳이 카운터 앞까지 불편한 걸음을 하시더니 나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대여점을 나오며 지난 6개월간 빌린 에로 비디오의 제목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마치 <스타워즈>의 인트로 자막처럼.

한때 번성했던 비디오대여점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그 뒤로 나는 얼마간 의기소침해졌다. 학원에서 학생들이 쑥덕거리고 있으면 혹시 내 얘기를 하나 싶어 불안했다. 내가 제 발 저린 도둑이었음을 깨닫게 된 건 ‘학원을 옮길까’ 하는 마음이 들던 즈음이었다. 어느 저녁, 수업을 마치고 나서려는데 민경이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희 아빠가 요즘 왜 비디오 빌리러 안 오시냐고, 홍콩 영화 신프로 많이 들어왔다고 전해드리래요.” 그 말에서 어떤 조롱의 기색이나 혐오의 기운은 감지되지 않았다. 아빠가 전해 달랬으니 전했을 뿐이라는 담백함과 그 나이 특유의 발랄함이 느껴졌을 뿐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직무상 알게 된 고객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어느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읽었을 법한 문장이, 불편한 몸임에도 딸을 위해 ‘에로 비디오나 빌리는 선생’에게까지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던 아저씨의 얼굴과 함께 슥 지나갔다. 하긴 그런 걸 소문내봐야 무슨 소득이 있겠나, 하고 넘어가면 그뿐이지만 그래도 돌이켜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약간 뜨거워진다. 인터넷이든 어디든 무신경하게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나 같은 인간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 같은 세상이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김홍민 북스피어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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