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마포 김사장의 찌질한 사생활
“실력이 안 되면 알아서 내려와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수영장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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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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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를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맞짱’을 신청했다
결과는 개망신, 참담했다 뭐든 배워두면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온다는 것을 나는 이때 실감했다.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제대 후에도 수영만큼은 꾸준히 배우러 다니고 있다. 아니, 나름대로 경력이 쌓였으니 배우기보다 수련한다고 할까. 일반적으로 강습은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 마스터반으로 나눠서 진행하는데 내가 속한 마스터반에는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들이 나오니까 강사가 뭘 가르치거나 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자유수영을 할 일이지 뭐하러 비싼 수강료를 내는 거냐. 내가 해보니 자유수영이란 게 숨이 차면 금방 쉬게 되더라. 반면 마스터반에서 경력자들과 함께하면 힘들어도 쉴 수가 없다. 강습은 뒷사람이 앞사람을 따라가는 일렬종대 구조로 진행되는데 내가 쉰다고 서버리면 뒷사람의 진로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앞사람과의 격차가 벌어져도 민폐이긴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뒤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빠르다 싶으면 “먼저 가시죠” 하고 순서를 바꿔주는 게 당연한 예의가 되었다. 그래야 정체되는 일 없이 모두가 원활하게 운동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나가다가 내가 선두에 서게 된 건 삼 년쯤 전부터였다. 당연한 결과라 여겼다. 제일 빨랐으니까. 아침마다 요령 피우지 않고 한 보람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지지난달에 새 수강생이 마스터반에 들어왔다. 좋은 체격에 키도 껑충했다.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동포인데 방학이라 3개월만 지낼 요량으로 입국했다고 들었다. 수영장 옆에 살았다던가. 하여간 엄청 빨랐다. 스트로크 자세가 유연하고 발차기도 발군이었다. 순식간에 그가 바로 뒤까지 왔을 때 나는 살짝 긴장했다. 딱 봐도 나보다 빨랐지만 선두를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3개월 뒤에 미국으로 갈 거잖아. 아직 강습의 룰도 제대로 모를 테고. 무엇보다, 바꿔주지 않는데 어쩌랴 하는 심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묘하게 어눌한 발음으로 이렇게 물어보는 거다. “헤이, 끝나고 나랑 시합 한판 해쉴래요?” 와, 진심으로 놀랐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 그런가. ‘이게 무슨 수영 꿈나무 선발대회도 아닌 마당에 너랑 시합을 왜 하냐’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지만 일단은 “제가 일이 바빠서” 하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쪽에서 뭉개면 적당히 넘어가겠거니 여겼다. 아니었다. 재차 ‘시합 한판’ 요청이 이어졌다. 그쯤 되니 계속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몇몇 수강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케이 목장의 결투’가 성사되었다. 종목은 50미터 자유형. 결과는, 참담했다. 25미터 턴 지점부터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애초에 양보했다면 모양새도 좋았을 텐데. 공연한 고집을 부리다가 이게 무슨 개망신인가. 덕분에 인생의 교훈을 하나 더 얻었다. “그러니까 실력이 안 된다 싶으면 알아서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합니다요” 하고 누구한테도 좀 충고해 주고 싶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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