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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3 19:38 수정 : 2016.11.24 09:16

[ESC] 마포 김사장의 찌질한 사생활
내가 ’입 다물고 버티기의 달인’이 된 기원을 찾아서

비주얼 헌트
일전에 각각 다른 세 사람으로부터 “원래 그렇게 말씀이 없으신가요”,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봐요”, “글이랑은 영 딴판이시네요”라는 말을 연속으로 들었다. 모두 처음 만난 상대지만 이들에게는 ‘내가 쓴 이런저런 잡글들을 읽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짐작건대 뭔가를 쓸 때는 온갖 찌질하고도 잡다한 얘기를 잘도 나불거리면서 왜 자길 만나서는 입을 딱 다무느냐는 불만을 돌려서 표현한 듯하다. 그렇다면야 내 쪽에서도, 당신을 처음 만난데다가 아무 정보도 없는데 무슨 할 얘기가 얼마나 있겠냐는 식으로 대꾸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나도 켕기는 게 있으니 그러진 못하고 뒤통수만 긁적이고 만다.

낯설고 불편한 사람이 있는 자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을 마주할 때 나는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입을 콱 다물고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했으면 했다, 안 했으면 안 했다, 뭐라고 딱 부러지게 의견을 표명하면 좋을 텐데 국정을 농단하다 들통 난 아무개도 아닌데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지그시 버티고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상대를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알게 된 후로는 고치려고도 해봤지만 잘 안 돼서 거의 포기한 상태다. 다만 어쩌다 이렇게까지 성격이 삐뚤어졌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그게 시작된 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는데 이마에 뾰루지가 나 있었다. 양쪽 손가락으로 짰더니 노란 고름이 나오더라. 그러다가 말 줄 알았다. 아니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놀이동산의 두더지 게임처럼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여드름이었다. 상황은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일 보는 친구들조차 놀랄 정도였다. 그중 한 놈이 “모나미 볼펜의 심을 빼고 앞 뚜껑 쪽으로 짜면 직방”이라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시술해주기도 했다. 당연히 가당치도 않은 짓이었다. 여드름은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며 점점 심해졌다.

아침에 거울을 보는 게 두려워질 때쯤 나는 이모에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얘기해 보았다. 왜 부모님이 아니라 이모였냐면 당시 우리 집은 사업 실패로 부도가 나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어딘가로 피신하셨고 나는 이모 집에 얹혀살았다.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이모가 깔깔 웃으며 타이르듯 했던 대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여드름? 사내새끼가 뭘 그런 걸로 병원에 가냐, 돈 아깝게. 결혼하면 다 나아.”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수험생 시절에 나를 돌봐준 이모의 은혜는 죽을 때까지 보답할 작정이지만 솔직히 “결혼하면 다 낫는다”던 그 순간의 이모만큼은 약간 원망스럽다.

할 수 없지. 나는 도서관과 서점을 들락거리며 여드름 관련 책을 읽고 자가 치료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참고할 만한 서적이 많지 않았을뿐더러 대개 푹 쉬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세안을 잘 하라는 게 정보의 전부였다. 푹 쉴 수도 없고 스트레스를 피하기도 어려웠던 내가 다음으로 선택한 건 풍문으로 들은 민간요법이었다. 이를테면 식초로 세안하면 좋다더라, 계란 흰자만 거품을 내서 팩처럼 붙이고 자면 효과가 있다더라 하는 따위들이다. 그것도 눈에 보이면 당연히 한소리 들을 테니 이모가 자는 한밤중에 부엌으로 숨어 들어가 시전할 수밖에 없었다.

고2, 여드름이 났다
병원에 가겠다는 나를
모두들 ’바보 취급’했다
밖에 나다니기가 싫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일간지에 실린 광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당신의 피부를 아기 속살처럼 만들어드립니다, 죽은 세포를 되살려….(껍질이 벗겨진 양파 사진 첨부)” 이튿날 나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강남에 있는 어느 사무실을 찾았다. 상담역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이 제품을 매일 바르면 나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샤○○이라고 적힌 화장품 가격은 30만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깨끗한 피부를 갖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을 노리고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대충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매일 발랐지만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두 달여를 그렇게 보낸 후 나는 9시 뉴스를 보고 “샤○○ 화장품을 만든 업체가 허위 과장 광고로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불을 요구하러 찾아간 강남의 사무실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 앞에서 몇 시간을 서성이며 느꼈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고작해야 여드름 때문에?”라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작해야 여드름’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인간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는 어디다 털어놓기도 곤란해서 혼자 끌어안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피해가 끊임없이 양산되고 마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어떤 소설에는 외모로 인해 성격이 삐뚤어지는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남자 역시 외모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남자는 외모에 신경 쓰고 있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중으로 굴절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겪어본 처지에서 말하자면 맹장염이나 여드름이나 빨리 치료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전자는 모두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반면 후자는 “좋은 시절이라는 뜻”이라느니 “청춘의 상징”이라느니 하면서 반쯤 장난 섞인 시선으로 대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신경 쓰는 쪽을 바보 취급해 버린다. 내 경우에 그 결과는 심각한 대인기피 증상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말이 없어졌다. 여간해서는 밖으로 나다니는 일도 삼갔다. 떠올리면 지금도 우울한 감정이 치민다.

하지만 몇 년 뒤에 실력 있는 전문의를 만나 상담을 받고 체계적인 치료를 한 덕분에 그럭저럭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혹시나 싶어 ‘여드름&자살’이라는 키워드로 구글링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많은 이(특히 학생)들이 한때의 나처럼 힘들어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친구들에게 “어른이 되면”이라는 식의 충고는 안 했으면 좋겠다. 되풀이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정히 어떻게든 해주고 싶으면 입으로만 그러지 말고 병원비라도 지원해주시길. 여드름은 청춘도, 상징도 아니다. 병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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