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마포 김사장의 찌질한 사생활
내가 ’입 다물고 버티기의 달인’이 된 기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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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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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겠다는 나를
모두들 ’바보 취급’했다
밖에 나다니기가 싫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일간지에 실린 광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당신의 피부를 아기 속살처럼 만들어드립니다, 죽은 세포를 되살려….(껍질이 벗겨진 양파 사진 첨부)” 이튿날 나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강남에 있는 어느 사무실을 찾았다. 상담역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이 제품을 매일 바르면 나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샤○○이라고 적힌 화장품 가격은 30만원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깨끗한 피부를 갖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을 노리고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대충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매일 발랐지만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두 달여를 그렇게 보낸 후 나는 9시 뉴스를 보고 “샤○○ 화장품을 만든 업체가 허위 과장 광고로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불을 요구하러 찾아간 강남의 사무실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 앞에서 몇 시간을 서성이며 느꼈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고작해야 여드름 때문에?”라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작해야 여드름’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인간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는 어디다 털어놓기도 곤란해서 혼자 끌어안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피해가 끊임없이 양산되고 마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어떤 소설에는 외모로 인해 성격이 삐뚤어지는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남자 역시 외모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남자는 외모에 신경 쓰고 있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중으로 굴절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겪어본 처지에서 말하자면 맹장염이나 여드름이나 빨리 치료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전자는 모두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반면 후자는 “좋은 시절이라는 뜻”이라느니 “청춘의 상징”이라느니 하면서 반쯤 장난 섞인 시선으로 대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신경 쓰는 쪽을 바보 취급해 버린다. 내 경우에 그 결과는 심각한 대인기피 증상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말이 없어졌다. 여간해서는 밖으로 나다니는 일도 삼갔다. 떠올리면 지금도 우울한 감정이 치민다. 하지만 몇 년 뒤에 실력 있는 전문의를 만나 상담을 받고 체계적인 치료를 한 덕분에 그럭저럭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혹시나 싶어 ‘여드름&자살’이라는 키워드로 구글링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많은 이(특히 학생)들이 한때의 나처럼 힘들어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친구들에게 “어른이 되면”이라는 식의 충고는 안 했으면 좋겠다. 되풀이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정히 어떻게든 해주고 싶으면 입으로만 그러지 말고 병원비라도 지원해주시길. 여드름은 청춘도, 상징도 아니다. 병이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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