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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12 20:37 수정 : 2017.04.12 23:50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있는 시민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SC] 마포 김사장의 찌질한 사생활
출판사 ‘증정’ 서적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보내기도 받기도 부담스러워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있는 시민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신문사에 다녔던 아무개 기자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편의상 그를 ‘길동’이라고 하자. 몇 차례인가 어쩔 수 없이 부서를 옮기긴 했지만 길동이 늘 가고 싶었던 곳은 문화부였다. 그는 출판 담당으로 일할 때 가장 마음이 편했다.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길동은 매주 100권이 넘는 도서를 받았다. 문학, 아동, 실용 등 분야는 제각각이었다. 모두 출판사에서 보도용으로 보내준 책들이었다. 그는 물리적인 시간상 다 읽을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훑어보기라도 하려고 노력했다. 그중 보도할 가치가 있다 싶으면 기사로 썼다.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소개하지 못한 책은 지인들에게 열심히 전파했다. 언젠가 소개하리라 벼르며 책상 아래 쌓아두는 일도 많았다. 그러는 사이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길동은 자신이 소개한 책을 집으로 가져갔다. 다른 건 몰라도 동화책은 꼭 그렇게 했다. 언젠가 아이가 읽고 그와 함께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한편으로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이지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장아장 기어다니는가 싶더니 금세 일어서서 걸었고 옹알이를 하는가 싶었는데 이내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길동이 바라던 순간이 도래했다. 아이가 글자를 읊조리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어린 날 읽었던 몇 권의 책은 무엇을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네”라는, 소싯적 들었던 광고 음악이 머릿속에서 맴돌더라고 훗날 길동은 회상했다.

아이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었다. 대부분의 아이가 그러리라 짐작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고 여겼다. 남들에게 말은 안 했지만 길동은 생각했다. 천재까지는 몰라도 영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천재일지도 몰라. 그래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알아듣기 쉽게 뭔가를 알려주는 일은 길동의 장기이기도 하다. 한번은 책을 읽던 아이가 “아빠, 증정이는 누구야?”라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증정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다. “그런 이름이 책에 나오니?”라고 묻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 방에 있는 책에 전부 증정이라는 이름이 써 있어.” 그제야 길동은 깨달았다. 증정, 출판사가 책을 보낼 때 찍는 도장이다.

신간서적 홍보하려 매번 보내도
메일 한통 없이 묵묵부답 ‘서운’
이제 내게도 쌓이는 신간 택배
‘잘 받았다’ 답장 못하는 처지 수긍

출판사의 ‘증정’ 도서에 관해 설명하려다가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적어보았다. 출판사는 홍보를 목적으로 언론사에 신간을 보낸다. 보낸다고 해서 다 소개되는 건 물론 아니다. 될 때도 있고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되지 않으면 섭섭하지만, 되면 기쁘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책이 그걸 필요로 하는 독자들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니까. 그런 바람을 가지고 언론사와 함께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도 보내곤 한다. 예컨대 북스피어에서 과학소설이 나오면 서울 에스에프 아카이브 대표인 박상준씨에게 ‘증정’ 도장이 찍힌 책을 우편으로 발송하는 식이다. 그렇게 보내는 책은 대략 열 권에서 스무 권 정도다.

전문가에게 책을 보낼 때의 마음가짐은 신문사에 보낼 때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어딘가에 글을 기고하거나 강연을 할 때 슬쩍 거론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섭섭해하지 않는다. 취향에 맞지 않는 모양이라 여기고 만다. 하지만 분명히 책을 보냈는데 아무런 기별이 없을 때는 약간 섭섭하다. 당사자가 보내 달란 것도 아니고 이쪽에서 멋대로 들이밀었는데 섭섭하긴 뭐가 섭섭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할 말은 없어도 역시 섭섭하다. 메모에 연락처가 있으니 문자 한 줄, 메일 한 통 보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잘 받았다고.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한두 번이야 바쁜가보다 짐작하지만 일 년 열두 달 매번 보내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직접 글을 기고하거나 강연할 기회가 생겼다. 책을 읽고 소개하는 일은 힘들긴 해도 즐거우니까 청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않았다. 그만두라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그만두는 법도 없었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사 년 가까이 연재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때는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격주간지, 라디오에서 동시에 책을 소개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얼굴을 내미는 일이 많아질수록 나에게 오는 책이 많아지더라는 현상을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북스피어 출판사로 한 권, 두 권 도착하던 택배가 그즈음부터 부쩍 늘었다. 모두 나와 같은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한 땀 한 땀 만든 책이었다.

받은 책은 힘닿는 데까지 읽고 칼럼이든 뭐든 쓰거나, 다만 몇 분이라도 방송에 나가 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도대체 왜 나한테 보냈는지 모르겠다거나, 읽고 싶지 않은 주제가 담겨 있거나, 읽었지만 미묘하게 소개할 타이밍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판권을 확인하면 출판사의 메일 주소를 알 수 있으니 잘 받았다는 메일 한 줄 보낼 수도 있는 노릇이다. 잠깐 시간을 내면 되는 일이다. 한데 떡하니 받아놓고 아무런 소개도 하지 않은 주제에 그저 “받았다”는, 별 시답잖은 메일을 보내려니 그건 그것대로 미안한 기분이 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는 거다. 나 정도의 인간이 이럴진대 해당 분야에서 이름난 필자들의 처지랄까 상황은 어떨지,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다.

이후로 북스피어에서 펴내는 책을 증정하는 일에 신중해졌다. 조심스러워졌다는 편이 더 맞겠다. 읽고 싶어 하지도 않는데 공연히 부담만 주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아울러 그동안 나에게 책을 보내준 편집자분들에게도 송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특히 장르소설을 출간할 때마다 챙겨준 오픈하우스 출판사 담당자에게 제일 송구하다. 올해 초에 받은 <토니와 수잔>은 흠잡을 데 없는 소설이란 이런 거라고 감탄하기까지 했으면서도 아무런 기별도 하지 않았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글을 쓴다는 것과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모든 소설 중에 단연 돋보였는데 이렇게나마 거론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도로에서 보복운전을 당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한 형제자매님들과 작가 지망생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봐달라고 부탁받는 일이 잦은 편집자라면 꼭 읽어보시길.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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