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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9 21:23 수정 : 2016.07.08 10:50

[매거진 esc] 김보통의 노잼, 노스트레스

김보통 칼럼.목마와 할배
말 태워주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유치원도 다니기 전의 얘기다.

진짜 말은 아니고, 말 모양을 한 마네킹 같은 것으로 크기는 아이들이 올라타기 좋게 자그마했다. 그 마네킹 말 대여섯 개를 스프링으로 고정해 놓은 리어카(말 그대로 포장마차)를 끌고 동네와 동네, 골목과 골목을 떠돌며 돈을 받고 아이들을 태워주는 것이 말 태워주는 할아버지의 일인데, 이동식/보급형 회전목마 같은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등장을 알리는 것은 골목 저 끝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동요 소리였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당시의 나는 ‘혼자 잘 놀다가도 그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들었다’고 한다. 평소 얌전하던 내가 갑자기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엉거주춤 일어나 말을 타는 시늉을 하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멀리서 그 동요 소리가 들려오곤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방앗간을 하고 계셨던 부모님은 가게를 비울 수 없기에 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려고 뒤늦게 두 손으로 내 귀를 막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땀까지 흘리며 연신 말 타는 시늉을 하는 바람에 결국은 번번이 일손을 멈추고 말을 태워야 했다고 한다.

어렴풋하게나마 당시를 기억한다. 들뜬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던 것과, 말 모형의 눈 부분이 유독 화려한 -동시에 촌스런- 색으로 칠해져 있던 것, 동요 소리에 맞춰 신나게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말을 탔던 것, 다 늘어진 테이프로 재생되는 동요 소리, 그리고 그 풍경 속에 늘 존재했던 말 태워주는 할아버지의 모습.

매번 같은 할아버지였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들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고, 비슷하게 야위어 있었으며, 비슷하게 구부정했던 느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할아버지들만을 모아 말 태워주는 할아버지 일을 시키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전세계의 산타 할아버지들이 그러한 것처럼.

시간이 흘러 ‘말 태워주는 리어카’는, 다른 수많은 것들이 그렇듯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조용히’ 사라졌다. 눈 부분엔 조잡한 솜씨로 현란하게 아이섀도가 칠해져 있고, 너덜거리는 손잡이는 고무테이프가 칭칭 감긴 말 모형은 매끈한 플라스틱 위에 깔끔하게 도색되어 번들거리는 소방차와 경찰차, 혹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모양의 전자동 놀이기구로 바뀌었다. 언제나 쓸쓸한 표정인 할아버지의 자리는 동전 교환기가 대신해 서 있다.

다른 것들은 여전했다. 손에 돈을 쥐고 차례가 돌아오길 바라며 먼저 탄 아이를 바라보는 아이들 표정, 놀이기구 위에 앉아 활짝 웃는 아이의 얼굴, ‘나도 타고 싶다’며 부모에게 투정을 부리다 혼이 나 우는 그 모습들은 내가 본 과거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가끔, 말 태워주던 할아버지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날인가부터 서서히 자신을 찾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그래서 이제는 사라져야 하는 때가 온 건가 싶은 예감을 했을 할아버지에 대해. 그때가 사람 냄새 나고 더 좋았지 하는 마음에서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 목적이 당신의 삶을 위한 돈벌이였더라도, 어린 시절 나와 같은 아이들에게 많은 좋은 기억을 남겨주었기에 부디 그 떠나는 마지막이 내 생각만큼 쓸쓸하지 않았길, 가끔 바랄 뿐이다.

김보통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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